본문 바로가기
이전 상태로 변경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National Library for chldren and young adults

메뉴 열기
전체보기

독서칼럼은 2006년 12월 23일부터 사회 저명인사와 평론가, 작가, 칼럼니스트 등 각 분야 전문가가 청소년에게 책·독서에 대한 단상 및 독서의 중요성 등에 대한 칼럼을 집필하고 있으며, 「도서관이야기(월간)」를 통해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독서칼럼

확인

  • 먹는 게 남는 것? 읽는 게 남는 것! 프로그램 정보
    먹는 게 남는 것? 읽는 게 남는 것!
    칼럼명 먹는 게 남는 것? 읽는 게 남는 것!
    집필자 조진호 (민족사관고등학교 생물교사/과학저술가)
    내용 ‘먹는 게 남는 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현재 과학을 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표현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할 수 있어요. 영양가 높고 맛있는 음식은 분명히 우리 몸에 에너지를 주고, 몸을 구성하는 물질들을 합성하도록 하는 필수적인 것이지요. 무럭무럭 자라나는 어린 친구들에게는 균형 있는 음식 섭취는 남는 것 그 이상입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음식 속의 모든 물질적 요소는 몸에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기도 해요. 몸을 이루는 모든 원자는 채 한 달도 못 머물고 다른 원자로 죄다 교체됩니다. 단 하나의 예외적인 신체 부위가 있는데, 바로 치아입니다. 치아를 구성하는 원자들은 꽤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왜 음식 얘기를 하고 있냐고요? 바로 이 말, ‘읽는 게 남는 거다’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음식이야 잠시 머문다손 쳐도 어쨌거나 머물다 가는데, 책을 읽으면 무엇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일까요? ‘남는다’라는 말을 우리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가치 있는 영향을 주는가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겠네요. 이런 측면에서 책만큼 우리에게 영향을 막대하게 주는 것, 남는 것은 찾아보기 쉽지 않아요. 뭐 사실 이 이야기는 그다지 특별하지도 않고, 살면서 많이 들었던, ‘책은 참 유익하다’는 이야기 같지요? 맞아요. ‘책 읽어라’라는 말을 여러분은 참 많이 듣고 살아요. 강조하지 않아도 하루 중에도 많은 책을, 정확히는 지겹도록 많은 글을 접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잉크로 쓰인 글보다는 요즘은 전자파를 내는 디지털 글자를 많이 접하고 있지요. 글을 읽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늘 ‘읽고 있다고!’라고 대꾸하고 싶을 정도일 겁니다. 자~ 그래도 한번 생각해 보자고요. 여러분이 읽은 수많은 글 중에서 지금 당장 이 순간, 기억나는 내용, 작은 문구라도 있는지요. 글의 홍수 속에 떠밀려 살고 있지만, 우리는 대부분 글을 그저 지나쳐 버립니다. 감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거나, 나에게 유용하지 않거나, 여러 가지 까닭이 있겠지요.
    하지만 단언컨대, 책만큼 가치 있으면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건 거의 없습니다. 살면서 마주하는 가치 있는 책, 나에게 감정적으로 동요를 주고, 웃게 하고, 눈물짓게 하고, 한동안 멍 때리게 할 만큼 통찰력을 주는 책. 그런 책만큼 나의 삶에 큰 방향을 제시하고, 힘을 북돋아 주는 것은 없습니다. 책 외에 그런 것을 더하자면 좋은 여행과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 정도일까요.
    어렸을 때 읽었던 몇 권의 동화책을 여전히 기억해요. 『위대한 취후의 왕두들』이라는 판타지 소설은 한동안 나를 상상의 세상에 머물게 했어요. 깊이 상상하면, 진짜 그런 세상으로 갈 수 있다는 확신까지 했을 정도로 오랫동안 헤어 나오질 못했지요. 중학교 때 본 『코스모스』라는 책은 과학을 사랑하게 만들었지요. 그 책이 만들어 준, 우주에 대한 감동은 학교에서 과학 시간에 배운 것보다 훨씬 생각의 지평을 넓혀 주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지금 제가 과학책을 쓰고 있는 것은 아마도 그 순간이 시작점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엘저넌에게 꽃을』이라는 SF소설은 과학이 이토록 따뜻하고 감동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어요. 열거하자면 너무 많은 책이 있지만, 내가 만난 주옥같은 책들은 지금의 나를 형성했고, 하고 있는 말과 쓰고 있는 글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 과학 만화책을 만드는 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살면서 읽었던 책들이 고스란히 그 안에 녹아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어요. 책을 읽고 상상 속에서 다녀왔던 세계, 책들이 말하는 어투, 책들이 가르쳐준 많은 지식들……. 이 모든 것이 현재 내가 쓰고 있는 책과 내가 하는 말로 그대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나를 구성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뼈와 살이 있을 테지만, 나의 고유한 생각과 말, 글이 바로 나의 핵심 아니겠어요?
    책은 왜 이토록 영향력이 클까요. 지금은 책을 쓰고 있기 때문에 예전보다 그 이유를 조금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책 한 권을 쓰기 위해서는 끝없이 고민해야 하고, 준비를 많이 해야 합니다. 가장 정확하고 정제된 문장을 만들도록 하나하나 최선을 다해야 하지요. 책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기승전결이 있는 탄탄한 내용이 갖추어지도록 수없이 뜯어고치지요. 왜냐면 독자들을 만나야 할 테니까요. 상대방을 앉혀 놓고 대화한다는 느낌으로 글을 쓰는데, 일상 대화보다 훨씬 더 완성도 높은 대화를 한다는 것이 책을 쓰는 일이에요. 이것은 저자의 입장이고, 그것을 보는 독자의 입장 역시 굉장히 적극적인 자세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가 TV나 영화를 볼 때는 편하게 앉아서 방관자의 입장에 있지요. 그에 반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마치 운동이나 여행을 하는 것처럼, 힘을 써야 하고 집중하는 행위예요. 적극적으로 경청해야 책이 말하는 바를 똑똑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책을 쓰고, 독자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양자가 최선을 다하는 행위입니다. 책을 쓰고 읽는 것을 우리는 그저 익숙한 일상의 일로 여기지만, 이것은 수천 년 전에 발명하여 발전시킨, 인류가 탄생시킨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정 마술 같은 발명이지요. 책은 시공을 초월해서 과거의 사람과 미래의 사람을 이어주는 정교한 통신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가치 있는 책들은 고전으로 남아서 오랫동안 사랑을 받을 테지요.
    좋은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에요. 몇 시간 동안 손에 책을 들고, 집중하기 위해서는 체력이 꽤 필요해요. 그렇기에 몸의 컨디션이 좋은 시간에 안락한 의자에서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기를 권합니다. 배고파서도 안 돼요. 책은 잠자기 전 피곤할 때 읽는 것도 안 돼요. 책을 읽는다는 것은 큰 투자가 들어가는 럭셔리한 행위라고 할 수 있지요. 그래도 책을 읽는다는 것은 들이는 힘에 비해서 훨씬 많은 것을 챙겨 올 수 있어 이익이 많이 남는 일입니다. 책만큼이나 가치 있는 행위로 여행,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을 꼽았습니다. 여행 이야기가 나왔으니 『나를 부르는 숲』이라는 여행 책을 소개할게요. 꼭 읽어 보세요. 후회 안할 겁니다. 여행과 사람 만나기, 이것들을 최대한 시간 내서 많이 하길 바랍니다. 여행에 비해서 독서는 마음만 먹으면 즉시 할 수 있고 비교적 저렴한 비용이 든다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 다시 한번 강조해요.
    우리는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합니다. 그날 있었던 일, 어제 봤던 TV 프로그램 등 주제는 차고 넘치지만 책에 대해서 얘기할 때만큼, 가슴 두근거리는 대화가 없습니다. 만일 그런 대화를 많이 못 해 봤다면, 당장 한번 해보세요. 정말로!
    공부하느라 지친 청소년들에게 책은 일종의 유용한 도구 정도로 생각될지 모르겠어요. 나에게 지식을 주고, 시험 성적도 올려 주는 그 무엇.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 선생님이기도 한 저는 그런 상황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으면, 지식도 많이 쌓을 수 있고, 글솜씨나 말솜씨도 세련돼지죠. 논술을 중시하는 요즘의 입시에서 장점이 될 수도 있고, 그야말로 그 사람을 성공하게도 하고, 멋지게 만들어 줄 거예요. 하지만 이런 이유로 책을 권하는 것은 책에 대한 일종의 무례한 평가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요. 당연히 위에서 말한 효과를 발휘할 것이 분명하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효과입니다. 책은 최고 품질의 즐거움이자, 쾌락이며,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게임이나 다른 무엇을 열심히 했을 때 받을 수 있는 비난과 눈치를 피할 수도 있고요. 알면서 왜 책을 안 볼까요? 글을 본다는 것은 머리를 많이 써야 하고, 체력과 시간이 소요되는, 꽤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지요. 요즘 세상에 편한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좋은 책을 찾고, 만나서 기꺼이 힘을 써 보세요. 거기에 황금보다 값진 진리가 있고, 사자의 심장 같은 용기가 있고, 꿀 같은 달콤함이 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제안에 대한 책임은 질 수 있어요. 절대 거짓말하지 않아요.

    ---------------------------------------
    조진호
    현 민족사관고등학교 생물 교사이며, 과학 저술가. 『게놈 익스프레스』, 『어메이징 그래비티』, 『판타스틱 과학책장』 등의 책을 썼다.
    ---------------------------------------
    내용보기
  • 책 속에서 멘토를 만나다 프로그램 정보
    책 속에서 멘토를 만나다
    칼럼명 책 속에서 멘토를 만나다
    집필자 임영주 (신구대학 겸임교수/ 아동문학가)
    내용 지방 강연을 가게 되면 꼭 들르는 데가 도서관이다. 예전에는 이른 아침 강연할 도시에 도착하면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강연 준비를 하고 신문을 보며 여유 있게 시간을 즐겼다. 어느 날, 그 도시에 도착한 아침엔 문을 연 카페가 없었다. 그게 계기였다. 그때부터 나의 강연 날 아침 풍경이 달라졌다. 도시에 도착하면 무조건 도서관행이다. 이른 시간부터 ‘열공’의 분위기를 느끼며 동기부여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지역마다 특색 있게 운영되는 도서관과 특유의 문화를 접하게 되는 아침의 행복이 남다르다.
    그날은 마침 ‘독서로 키우는 내 아이’라는 주제로 교육청에서 ‘부모교육’을 하는 날이었다. 준비한 강연 내용은 제목이 보여 주는 그대로다. ‘책 속에 길이 있으니 자녀들에게 책 보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거실에서 TV를 치우거나 서재로 만들고 부모님이 자녀에게 책 읽는 모습을 보이는 독서 롤모델이 되자’는, 모두 다 아는 얘기를 해야 하는 고난도 강연이었다.^^
    강연 시간이 다가와 도서관에서 교육청으로 나서는데 도서관 1층에 게시된 사진과 글이 눈에 들어왔다. 링컨 대통령과 그의 일화였다. 그날 강연 오프닝 멘트는 링컨의 일화로 시작했다. 링컨의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두 여인의 이야기였고, 강연은 그 얘기면 충분할 정도였다. 링컨은 어렸을 책부터 책을 가까이하도록 해 준 새어머니 세라와 작가 스토(Harriet Beecher Stowe) 부인이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링컨을 만든 두 여인의 이야기와 책에서 역사적 사건을 이끌어 내고 자유와 평등의지를 실천한 이야기는 자칫 진부한 이야기로 흐를 수 있는 독서 강연을 공감으로 이끌었다.
    책에서 길을 찾고 멘토를 만난 링컨의 이야기는 내게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나 또한 책 속에서 길을 찾았고 멘토를 만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밀리언셀러 『인간시장』의 작가 김홍신 선생님은 대학 시절 책을 통해 만났고, 지금은 ‘전통 그림동화책’의 공저자로 작업을 하는 꿈같이 행복한 일을 하고 있으니 인생 최고의 스승을 책을 통해 만난 것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강연이나 상담을 할 때 꼭 권하는 몇 가지가 있다. ‘책을 사자. 저자 강연도 가고, 강연이 끝나면 뛰어나가 저자에게 사인을 받자. 저자의 숨결을 느끼며 친필 사인을 받는 일은 또 다른 책을 만나는 일이다’라는 얘기다.
    나의 버킷리스트에도 저자 사인 100권 받기가 들어 있다. 진즉 시도했으면 벌써 이루었을 텐데 하며 아쉬워하지만 지금이라도 그 진가를 알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고 기뻐한다. 2000여 년 전 혹은 수백 년 전 우리와 시공간을 달리했던 공자, 소크라테스, 율곡 등을 지금 만난다면 어찌 가까이에서 숨결을 느끼고 싶지 않을까. 다행히 그분들은 책을 통해 ‘간접 만남’을 가질 수 있지만 지금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며 ‘세상을 보여 주는’ 저자들과 ‘직접 만남’을 많이 시도한다는 것 또한 엄청난 기회를 만드는 일이다.
    ‘책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책을 만든다’는 말의 참뜻을 깨닫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책 한 권 또는 책 속의 글 한 줄에서 섬광처럼 번뜩이는 지혜와 ‘바로 이거야’를 찾는 일이 기쁘다. 책 속에서 멘토를 찾으니 NQ(Network Quotient, 인맥지수)가 높아지고, 책이 말을 걸고, 책에게 말 거는 일이 늘어나니 날로 지혜로워진다.
    최근 칼럼에 썼듯 나에게는 겨울이 안성맞춤 ‘독서의 계절’이다. 눈 펑펑 내리는 겨울날, 따뜻한 공간 어디쯤에서 책을 읽는다는 건 어느 행복한 시간과도 바꿀 수 없다. 몇 주 전 SNS에 “이 겨울에 읽을 책을 구입했는데 도착했네요.”라는 글과 책 사진을 올렸다. 『아라비안나이트』를 재밌게 읽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따라 환상의 여행을 했으며, 링컨이 책 속에서 길을 찾았다는 『엉클 톰스 캐빈』을 읽고 있다. 새삼 재미있고, 뭉클하며 기대로 충만하다. 다음 읽을 책 『돈키호테』는 또 어떤 기쁨을 줄까. 10대에 읽었던 책의 다가섬이 다르고 이후에 같은 책이지만 읽을 때마다 새로움을 주는 게 고전의 힘이라는 걸 알지만 이번에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읽으며 부모교육 전문가여서일까. 어린 소녀 ‘에바’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새롭게 들리는 힘에 전율을 느낀다.
    여전히 나는 책 속에서 길을 발견한다. ‘내가 먼저 걸어가면 길이 된다’는 루쉰의 글에 ‘내가 책을 읽으면 길(멘토)이 생긴다’를 대입하며 책을 통한 위대한 만남에 두근거린다. 이 겨울을 따뜻하게 지펴 줄 책 몇 권을 서재에 펼쳐 놓는다. 행복하다.


    글 : 임영주 박사(신구대학 겸임교수/ 아동문학가)
    중앙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교육학석사, 가천대학교 대학원에서 아동문학으로 문학석사와 현대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시집과 동화책, 부모교육서를 쓰며 행복해하는 글쟁이다. 부모교육 전문가로서 전국을 다니며 자녀 양육과 소통에 대해 강연을 펼친다. 청소년 인성 교육과 ‘독서’ 특강, 칼럼니스트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내용보기
  •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문 프로그램 정보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문
    칼럼명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문
    집필자 안호상 (국립중앙극장 극장장)
    내용 많은 사람이 유년 시절 접한 한 권의 책이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고 이야기한다. 책은 우리가 가 보지 못한 곳을 상상하게 해 주고, 아직 해 보지 못한 것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 주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 주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어릴 적 기억을 돌이켜보면 사실 책과 아주 친밀한 환경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다녔던 시골의 초등학교에는 연필과 지우개조차 준비하기 어려운 친구가 태반이었고, 학교에서 나눠 주는 교과서 역시 수업시간에 챙겨 오기는커녕 낱장으로 뜯어서 딱지치기를 하는 데 사용하곤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작은 시골의 국민학교에도 학급 문고는 있었다. 비치된 책이라곤 열 권 남짓이 전부였고, 이용하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지만 말이다. 방학을 앞둔 나는 학급 문고에 비치된 책을 모두 대출해 왔고, 그걸 읽으며 긴긴 방학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흘러 서울로 상경해 대학생이 된 나는 그 시절을 종종 떠올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방학에 농촌 봉사활동을 위해 고향에 들를 기회가 생겼고, 불현듯 학급 문고가 생각났다. 이번 기회에 작은 학교의 학급 문고를 채워 주기로 결심하고, 봉사활동에 동참하는 후배들을 불러 모아 각자의 책꽂이에 잠자고 있는 동화책,·소설책 등 100여 권을 모았다. 라면 박스에 차곡차곡 쌓고 노끈으로 질끈 묶은 책 무더기를 들고 고향 가는 길에 오르는 마음은 마치 금의환향하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오랜만에 찾아간 학교는 어느새 문고를 담당하는 선생님도 있고 제법 번듯한 도서실도 갖추고 있었다. 가져간 책들로 책장이 채워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사실 나는 전학 오기 전 빌렸던 학급 문고를 반납하지 못하고 떠나와서 늘 그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있었던 터였다.
    어쩌면 남보다 늦게 책을 읽기 시작한 내가 처음으로 손에 든 책은 『장발장』이었다.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간 감옥살이를 해야 했던 죄수 장 발장의 불우한 인생을 다룬,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그 책이다. 숨 쉴 틈 없이 빠르게 전개되는 사건의 속도와 그것이 주는 스릴감 덕분에 밤새워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주인공을 따라 때론 함께 분노하고, 때론 슬픔의 감정에 공감하며 책을 읽는 즐거움에 푹 빠졌다. 요즘엔 청소년을 위한 축약본도 주인공 이름을 딴 『장발장』이 아닌 원제 『레 미제라블』로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독서의 수준도 그만큼 높아졌겠구나 하고 새삼 추측해 본다.
    책은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문과 같다. 어린 시절의 나는 『장발장』을 읽으며 아직 한 번도 열어 보지 못했던, 사회를 향한 시선을 비로소 개방하게 됐다. 사회적으로 억울함을 당하는 이들, 이른바 ‘사회적 약자’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이다. ‘불쌍한 사람들(레 미제라블)’로 대변되는 하층민·노동자, 매춘부, 거지들의 절망적인 현실과 온정을 베푸는 주교의 모습, 평생을 쫓기는 주인공 뒤로 암막처럼 드리워진 부정부패, 그리고 프랑스 혁명의 발단이 된 민중 봉기까지.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30여 년간의 집필 활동 끝에 세상에 내놓은 이 책에는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갖춰야 할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성인이 된 나는 어릴 적 읽었던 『장발장』을 뮤지컬 <레 미제라블>로 다시 만났다. 그 감회는 무척 새로웠다. 뮤지컬은 책으로 읽을 때와는 또 다른 새로운 감동을 선사했다. 책 속의 결말은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입고 더욱 웅장해져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것은, 처음 이 책을 읽었던 어린 시절과 다르게 같은 이야기를 더 넓은 시야에서 생각할 수 있는 사고력을 갖게 된 ‘나’를 발견한 것이다. 책에 담긴 중요한 텍스트를 청소년기에 경험하는 것은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앎’의 범위를 더욱 넓게 확장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물꼬가 된다.
    책의 경계는 무한하다. 사실의 기록을 담기도 하고, 논리적 진술을 나열하기도 하며, 미지의 이야기를 보여 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독서를 통해 과거를 유추하고, 현재를 명확하게 이해하며, 미래 또한 상상할 수 있다. 종이에 또렷하게 인쇄된 텍스트에서 생각의 나래를 펼치는 재미와, 그 행간과 여백에 숨겨진 것들이 무엇일지 상상해 보는 책 읽기의 매력은 또 어떤가. 책 속 텍스트를 완전하게 내 것으로 습득하는 것도 좋지만, 읽는 과정에서 엉뚱한 상상을 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러다 ‘오독(誤讀)’에서 오는 새로운 발견과 마주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우리는 책 속에서 지식을 찾는다. 종종 해답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히려 책의 역할은 사유를 자극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책 읽기의 과정에서 우리는 무언가에 집중하고 몰입하게 되고, 이런 집중과 몰입의 시간은 인간의 사유를 자극해 상상력을 만들어 낸다. 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려 있다.

    안호상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거쳐 단국대학교 대중문화예술대학원을 졸업했다. 예술의전당에서 공연기획부장, 공연사업국장, 예술사업국장을 지냈으며, 현재 국립중앙극장 극장장이자 ISPA(International Society for the Performing Arts,국제공연예술협회) 이사, 상명대 문화기술대학원 공연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 World Peace Orchestra 국제 예술 자문위원 등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치고 있다.
    내용보기
  • 즐거운 연극 세계로의 초대 프로그램 정보
    즐거운 연극 세계로의 초대
    칼럼명 즐거운 연극 세계로의 초대
    집필자 임혜경 (숙명여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
    내용 읽기란 책만 읽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읽기란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보는 것, 정독하는 것, 상상해 보는 것, 분석적으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해도 될 것 같다. 그래서 책뿐만 아니라 시청각이 포함된 오감각적인 모든 분야도 읽기가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어 히치콕 영화 읽기, 햄릿 연극 읽기, 피카소 미술 읽기, 모차르트 음악 읽기 등 온갖 장르를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뭐든 열심히 읽으면 읽힌다. 사람의 마음까지도…….

    나는 이번 기회에 청소년들에게 특별히 연극 읽기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프랑스문학 전공교수이면서 2009년에 창단한 극단 프랑코포니 대표로서 동시대 프랑스어권 작품을 번역하여 대학로에서 매년 1편씩 공연을 제작하고 있음). 연극은 문학에 속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술, 음악, 영상, 무용 등 총체적인 것을 아우르고 있는 폭넓은 분야이다. 그런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읽는 책 중에서도 가장 안 읽은 장르가 연극 텍스트, 희곡이 아닌가 싶다. 초중고 국어 교육에서, 비중이 가장 약한 분야가 연극인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말로 된 책에서 서술체와 대화체가 나올 때 구별이 되도록 자연스럽게 읽는 사람을 보기가 사실 쉽지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흔히들 연극이란, 우리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자연스럽거나 사실이 아니고 흉내 내고, 꾸미고, 인위적인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나 소설이 우리 현실과 떨어져 있지 않듯이 연극도 우리 현실과 아주 가까이 있으면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알고 보면 그리 어려운 장르는 아니다. 접해 보지 않아서 익숙하지 않을 뿐이지 그 세계를 알면 알수록 빠져들게 만드는 재미있는 무엇이 있다.

    연극 읽기에 어떤 재미가 있을까? 먼저 연극 책, 희곡을 한번 펴 보자. 어떻게 쓰여 있는가? 간단히 말해, 등장인물의 행동을 지시하거나 상황을 알려 주는 지문이 있고, 등장인물 간에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체가 있다. 작가와 작품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지만, 희곡에는 빈칸이 많다. 빈칸은 독자가 상상하는 공간이 되기도 하고, 그 인물을 맡은 배우가 어떻게 극적 공간을 느끼고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발성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준비하게끔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희곡은 눈으로 읽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무대에서 상연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래서 글 자체에 무대와 등장인물들을 위해 설정해 놓은 시공간과 움직임, 입체적인 스케일이 숨겨져 있다. 시나 소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읽고 상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로 분한 배우가 실제로 무대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것이다.

    그런 다음 무대 읽기를 하기 위해 공연을 보러 가 보자. 희곡을 먼저 읽고 공연을 보러 갈 수도 있고, 공연을 본 다음에 희곡을 읽을 수도 있다. 희곡을 먼저 읽고 공연을 보면 내용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상상한 것이 어떻게 무대화되었는지를 살펴보면서 집중하게 된다. 반대로, 공연을 본 다음 희곡을 읽으면 무대에서 본 멋진 장면이 책에서는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지 확인하면서 또 다른 즐거움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어렸을 때부터 박물관, 미술관에 가고, 연주회도 보러 가듯이 다양한 문화를 접하려면 영화도, 연극도 보러 다녀야 한다. 그중 가장 보러 가는 습관이 안 된 분야가 연극인 것 같다. 한번이라도 가 본 적이 있으면 극장에 가는 것이 어색하지 않고 가게 된다. 그러나 한 번도 가 보지 않으면 성인이 되어서도 공연장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한편 생각해 보면, 연극만큼 인간의 희로애락을 직접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예술도 없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영화는 영화대로 멋진 스케일을 가지고 있지만, 연극은 영화처럼 필름이나 CD, 파일로 만들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복제 가능한 예술이 아니다. 살아 있는 사람(배우)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관객 앞에서 라이브로 공연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일 하는 공연이 똑같지 않다. 어떻게 하면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아도, 서로 보지 않더라도 연결하고 지낼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하이 테크닉의 시대에, 연극은 어쩌면 아주 불편한 예술일지도 모른다. 영화처럼 상영 시간이 하루에 여러 번 있는 것도 아니고 겨우 하루 한번 하는 공연을 같은 장소에 같은 시간에 모여 같이 봐야 하니까.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수공업적인 예술인 연극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함께 만드는 것이다. 무대를 만드는 사람들은 작가, 연출가, 배우를 비롯하여 필수 스태프들인 무대, 조명, 의상, 분장, 조연출 등 수많은 예술가가 모여 멋진 무대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 아무것도 없는 평면의 인쇄체 글을 가지고 인간과 인간이 머리를 맞대고 상상하며 입체를 만들고 환상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작가, 연출가, 배우, 스태프들이 만나 아무리 훌륭한 작품을 만든다 하더라도 마지막으로 관객이 없으면 공연은 완성되지 않는다. 그래서 공연의 완성은 관객과 함께이다. 관객의 유무, 호응도에 따라 공연이 살았다 죽었다 한다. 이 모든 구성 요소가 다 들어가 배합되고 일체가 되어야 성공적인 공연이라고 할 수 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모여서 해야 하는 가장 살아 있는, 인간적인 놀이가 연극이다. 이런 멋진 연극 세계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몰라도 호기심을 가지고 희곡도 읽고, 무대도 읽으면서 환상적인 연극 세계로 우리 함께 떠나가 보자!


    임혜경:
    현재 숙명여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 대학원장.
    극단 프랑코포니(불어권) 대표. 번역가, 연극평론가.
    프랑스 정부 교육공로훈장 수훈(PA)
    내용보기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