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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National Library for chldren and young adul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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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칼럼은 2006년 12월 23일부터 사회 저명인사와 평론가, 작가, 칼럼니스트 등 각 분야 전문가가 청소년에게 책·독서에 대한 단상 및 독서의 중요성 등에 대한 칼럼을 집필하고 있으며, 「도서관이야기(월간)」를 통해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독서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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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운명을 바꿔 놓은 세 권의 책 프로그램 정보
    내 운명을 바꿔 놓은 세 권의 책
    칼럼명 내 운명을 바꿔 놓은 세 권의 책
    집필자 김슬옹 (『세종 한글로 세상을 바꾸다』의 저자 / 『훈민정음 해례본』 인류 최초 복간본 해설자.)
    내용 내 운명을 구한 아버지 일기장
    2013년 청소년들을 위한 책 『열린 눈으로 생각의 무지개를 펼쳐라』라는 책을 내면서 앞머리에 이렇게 적었다. “갈 길 몰라 헤매던 청소년 시절에 힘을 북돋아 주셨던 수원중학교 은사님이셨던 홍승복 스승님과 고등학교 때 한글의 꿈을 키워 주셨던 오동춘 스승님께 이 책을 바칩니다.”
    두 분 덕에 질풍노도와 같은 사춘기 시절의 고민을 이겨 나가며 한글학자의 꿈을 키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3학년이 되자 벗들은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연합고사 준비에 정신이 없었지만 고등학교 진학조차 어려운 나는 집안의 가난을 원망하는 처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나는 아버지 일기장을 읽게 되었다. 서랍을 뒤지다가 파란 펜글씨로 써 내려간 아버지의 젊은 시절 일기장을 보게 된 것이다. 6.25 전쟁 후 누구나 어려웠던 시절, 온갖 고생하며 인생 풍파를 이겨 나가기 위해 애쓴 일들이 한글로 촘촘히 적혀 있었다. 이 일기 덕에 가난한 집안 처지를 원망하는 마음보다 내 스스로 인생을 열어 가리라는 새 힘이 솟게 되었다. 그러던 터에 중 3 담임이셨던 홍승복 선생님께서 국비로 운영되는 철도고등학교 진학을 도와 주어 공무원의 꿈을 꾸게 되었다. 막상 서울 용산에 있던 철도고등학교 업무과에 진학하고 나니 또 다른 고민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학교 공부가 적성에 안 맞는 것이었다. 여객규정, 객화차규정 등 철도 공무원이 되기 위해 배워야 하는 과목들이 모두 법전을 외우듯 해야 하는 공부인지라 체질에 맞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학교 공부보다는 토머스 하디의 『테스』 같은 소설이나 「학생중앙」 같은 청소년 잡지에 더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또 학교에 기숙사가 없어 지방에서 올라온 몇몇 친구는 신문 보급소에서 신문을 배달하며 다녔다. 이 친구들 덕에 점심시간마다 신문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었는데 이때는 한자를 더 많이 쓰던 시절이었다. ‘아기’라는 쉬운 말보다는 ‘영아(?兒)’라는 말을, 그것도 한자로 적던 시절이었다. 그런 신문을 보며 대중적인 정보를 주고받는 신문에서조차 세종대왕이 만든 쉬운 한글을 왜 무시할까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내 진로를 바꿔 놓은 한 권의 책
    그러던 중에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1977년 10월쯤에 「학생중앙」 잡지에서 한글운동, 국어운동 동아리원들을 모집하는 작은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그래서 가입한 모임이 한글학회 부설 ‘전국국어운동고등학생연합회’였다. 이 모임에서 벗들과 함께 우리말과 글에 대한 토론과 계몽 운동 등을 하게 되었다. 이때 내 운명을 바꿔 놓은 책을 만나게 된다. 이 모임 지도교사이셨던 오동춘 선생님 추천으로 외솔 최현배 선생이 쓴 『우리말 존중의 근본 뜻』(정음문화사)이라는 책을 읽고 토론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의 첫머리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배달말(한국어)은 배달겨레의 상징이며, 배달 정신의 표현이며, 배달 문화의 총목록이다. 우리는 겨레를 사랑하며, 또 그 문화를 사랑하며, 따라 그 말을 사랑한다.”
    이 책을 읽으며 한자를 마구 섞어 쓰는 신문의 모순을 깨닫고 세종의 꿈, 한글의 꿈을 실천하는 우리말글 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 꿈을 더욱 굳히기 위해 한자로 적을 수 없는 순우리말 이름을 짓게 되었다. 원래는 김용성(金庸性)이라는 한자식 이름이었는데 ‘슬기롭고 옹골찬 우리말글의 옹달샘’이 되자는 뜻에서 ‘슬옹’이라 지었다. 이 이름을 빨리 알리고 싶어 2학년이 되자마자 아예 새 이름표를 바꿔 달고 학교에 갔다. 친구들이 환호해 주었지만 호적을 바꾼 것은 아니므로 오래 달고 다닐 수는 없었다. 결국 대학 2학년 때인 1983년에 서류 재판을 통해 호적을 바꿔 온전한 내 이름이 되었다. 대학에서는 외솔 선생님이 쓰신 『우리말본』, 『한글갈』을 읽으며 한글 전문학자로서의 꿈을 더욱 다지게 되었다. 『우리말본』은 주시경 선생의 뜻을 이어 우리말 문법을 체계화한 책이고 『한글갈』은 한글의 역사를 장중하게 풀어낸 책이다. 『우리말 존중의 근본 뜻』과 함께 외솔의 3대 저서가 우리말글의 꿈을 이루는 밑거름이 된 셈이다.

    평생의 동반자 『훈민정음 해례본』
    대학 시절에는 세종대왕이 1446년에 직접 펴낸 『훈민정음 해례본』을 공부하게 되었다. 고 1 때 세종을 닮은 학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지 5∼6년이 흘러 세종대왕의 꿈이 담긴 책을 직접 보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쉬운 문자로 누구나 지식과 정보를 나누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맘껏 표현하며 편안하게 살라는, 정말 상식적이지만 가슴 벅찬 인류 보편의 꿈을 담고 있었다. 곧 세종이 직접 저술한 본문에는 “내가 이것을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라고 했고 이 책 서문 격인 ‘정인지 서’에서는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자연의 문자가 있다.”라고 하면서 “슬기로운 사람은 하루아침을 마치기도 전에, 슬기롭지 못한 이라도 열흘 안에 배울 수 있다. 이 글자로써 한문 글을 해석하면 그 뜻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글자로써 소송 사건을 다루면, 그 속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라고 한글의 우수성과 효용성을 자신감 있게 선언하고 있다.
    2005년에 서울대는 청소년들을 위한 인류 고전 200권을 발표하면서 이 책을 놓치는 실수를 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나는 이 책이 왜 인류의 빼어난 고전인가를 청소년들에게 들려주는 책, 『28자로 이룬 문자혁명 훈민정음』(아이세움)이란 책을 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이제 인류가 가치를 인정한 책이 되었다. 유네스코는 1997년에 이 책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했고, 이보다 앞서 1989년에는 훈민정음 발명자이자 해례본 저술 책임자인 세종의 이름을 딴 세종대왕상을 문맹퇴치 공로자들을 위해 제정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양반 사대부들이 싫어한 까닭에 일찍 희귀본이 되었고 1940년에 기적처럼 경북 안동에서 원본이 발견되어 간송 전형필 선생이 소장하게 되었다. 2015년 간송미술문화재단은 교보문고와 함께 이 책을 똑같이 만든 복간본을 펴냈다. 영광스럽게도 필자는 복간본 제작 학술 책임과 해설서 집필을 맡았다.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에 있는 최첨단 수장고에서 유족의 배려로 이 책을 직접 보았는데 그때는 세종대왕을 직접 만난 기분이었다. 아버지의 일기장, 외솔 최현배의 『우리말 존중의 근본 뜻』,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해례본』이 세 권의 책을 만난 행운과 기쁨을 우리 청소년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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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솝 우화』와 성경과 만화책 프로그램 정보
     『이솝 우화』와 성경과 만화책
    칼럼명 『이솝 우화』와 성경과 만화책
    집필자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내용 『이솝 우화』는 성경과 불경, 코란에 버금가는 책이 아닐까. 문명의 꽃이 문화 예술이고 열매가 과학 기술이라면, 그 뿌리는 종교 혹은 신화라는 게 대다수 인문학자의 의견이다. 나는 특정 종교를 따르지 않는 사람이지만, 신화와 문학 속에서 신의 역할이 꽤 중요하기에 신성한 존재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신이 없다면 신을 발명해야 하는 게 인간이라고 하지 않는가.
    특정 종교가 지배하는 환경에서 자라나는 아이는 관념이나 상징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이야기의 틀에 익숙해진다. 그 아이에게 경전은 세상을 살아가는 가이드북이 된다. 종교의 그늘을 모르는 아이는 그런 경전도 없이 경험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익힌다. 물론 그런 아이에게 경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굳이 경전이란 딱지를 붙이지 않아도 지혜의 책이 있기 마련이다.
    이솝 우화집. 나는 삶의 지혜를 가르친 책을 꼽으라면 이솝 우화집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뒤 주로 만화책을 뒤적였지만, 그 와중에도 정색하고 독서라는 것을 해야 했기에 심각하게 읽은 동화책을 떠올리라고 하면, 이솝 우화집을 빼놓을 수 없다. 누구나 잠들기 전 어른으로부터 옛날이야기 듣기를 유난히 좋아했던 유년기의 기억이 있다. 한글을 깨우친 뒤 읽기 시작한 책은 그러한 이야기 듣기의 방식으로 머릿속에 흡수되거나 가슴에 심어지기에 아련하지만 묵은 향내를 오래도록 풍긴다. 『이솝 우화』는 그런 식으로 어린 시절의 나를 사로잡았고, 지금도 무릎을 치게 하는 재치의 묘미를 환기해 준다.
    나는 묘하게도 『이솝 우화』를 떠올릴 때마다 『어린이 구약 성서』가 기억의 갈피 속에서 아른아른 솟아나는 것을 느낀다. 『이솝 우화』를 즐겨 읽던 때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어린이를 위한 구약 성서도 읽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 내가 읽은 『어린이 구약 성서』는 선교용으로 제작된 듯하지만, 나에겐 오로지 재미있는 옛날이야기 책이었을 뿐이다. 신앙이 아니라 삶의 지혜를 곁들인 이야기 모음집이었다. 『이솝 우화』가 그러하듯이. 『이솝 우화』는 신앙이 없는 아이에게 경전이었다.
    내가 어린 시절에 읽은 이솝 우화집은 당연히 지금 내 곁에 없다. 다행히 책꽂이에 낡은 이솝 전집은 있다. 영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유종호 선생님이 번역한 책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솝 우화』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는 아주 짧다: 배고픈 여우 한 마리가 포도송이를 따려 했습니다. 나무를 기어 올라가는 포도넝쿨에 달려 있는 것인데 너무 높이 달려 있어 뜻을 못 이루었어요. 여우는 그 자리를 뜨고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아직 익지도 않은걸, 뭐.”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는 자기 합리화의 맹점을 지적하는 심리학 이론을 재미있게 풀이하는 예화로 동원되기도 한다. 어린 내가 심리학을 생각했을 리가 없다. 나는 우화를 읽으면서 여우의 표정 변화를 상상했기에 더 재미있어했다. 배고픈 여우가 포도를 봤을 때 뻔쩍 뜨인 두 눈, 나무를 타고 올라가면서 침이 가득 고였을 입가의 미소, 자꾸만 나무에서 미끄러질 때 일그러진 얼굴, 마침내 포기하곤 주변을 슬쩍 훑어보곤 포도를 등 뒤에 놓고 떠나며 뻔뻔하게 포도를 깎아내리기 위해 삐죽거리는 주둥이. 이 모든 표정과 행동이 그 무렵 내 의식을 지배하던 만화책의 컷들처럼 연속해 떠올랐다. 처음 읽고 나선 절로 피식 웃음이 나왔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나 그 웃음의 복잡한 의미는 나중에 커 가면서 생각하게 되고, 우화의 해석도 순박한 단계를 지나 복잡해졌다. 이 우화는 우습다. 그 웃음은 타인의 불행에서 온다. 동시에 그 불행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타인의 자기 위로가 가당찮은 것이기 때문에 웃음을 유발한다. 그런데 타인의 불행은 비극에 속하지만, 이 불행의 우화는 거꾸로 희극이 된다. 독자가 연민을 보내야 할 불행의 주인공이 스스로를 속이기 때문이다. 독자는 정직하지 못한 주인공을 동정하지 않는 법. 그를 비난하기 위해 웃어 버린다. 그래서 이 우화는 우스꽝스런 심리 드라마가 된다.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는 인생이 비극과 희극 어느 한쪽으로만 쏠린 게 아닌, 희비극이란 것을 재치 있게 일러준다. 어린 시절에 내가 그런 의미를 조숙하게 깨달은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처음 읽고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대신 다행히 피식 헛웃음을 던졌다는 것, 그로 인해 조롱하는 법을 배웠다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그랬을까. 아마 지금껏 살아오면서 현실에 진지하게 접근하기보다는 냉소와 조롱을 던지곤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물러선 경우가 더 많았던 것은 아닐까.
    몇 해 전 노벨문학상과 관련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해마다 한국 문단과 언론이 노벨문학상 발표에 귀를 기울이는 게 가장 성대하지만 덧없는 문학 축제가 된 듯한 느낌이다. 평소 한국 문학에 아무런 애정도 없는 사람도 마치 올림픽 메달 소식을 기다리듯 관심을 표명하는 게 반갑지도 않고 씁쓸하기만 하다. 노벨상을 향한 짝사랑도 지겹고, 번번이 수상의 기쁨이 돌아오지 않을 때마다 “노벨상이 문학의 전부는 아니다.”라는 점잖은 소리에도 짜증이 난다. 그래서 나는 신포도를 외면한 여우가 “저 포도는 맛이 없을 거야.”라며 노벨문학상에 콧방귀를 뀌곤 잊어버리려 하는 한국 문단을 안쓰러워하는 칼럼을 썼다. 그동안 내가 뜻한 대로 이루지 못한 일이 많았고, 그럴 때마다 신포도를 향한 욕망을 애써 부정하는 태도를 보였던 경험이 칼럼 속에 투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어릴 때 읽은 우화 속의 여우가 어느덧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닮았다는 것을 깨달으며 애처롭게 나이를 먹어 간다.
    나는 2000년대 초 프랑스 파리에서 특파원으로 일했다. 그때 딸아이를 현지의 공립 초등학교에 보냈다. 아이가 9살 때 학교에서 배운 시를 집에 와 암송했다. 라퐁텐의 시였다. 『이솝 우화』를 시로 재구성한 것이었다. 여우와 까마귀 이야기였다. 너무 잘 알려진 우화였다: 까마귀가 고기를 입에 물고 나무에 앉아 있을 때 배고픈 여우가 그 밑을 지났다. 여우가 “목소리 고운 까마귀 님, 노래 한 곡 들려주세요.”라고 아첨했다. 우쭐해진 까마귀가 노래를 부르려고 ‘까악’ 하는 순간 고기는 영악한 여우의 발 앞에 떨어졌다.
    고대 그리스의 노예였다고 하는 이야기꾼 이솝. 그는 기원전 6세기 무렵에 살았다. 그러나 그는 이야기의 세계 속에서 불멸의 존재가 됐다. 이솝은 한때 내 어린 날 찾아왔다가 사라졌지만, 잊지 않고 되돌아와 내 아이의 상상 세계 속으로도 흘러갔다. 혈연을 타고 흐르는 문화의 물결이었다. 이야기의 오묘하고 신비로운 현상이었다.
    『이솝 우화』는 멈추지 않는 시간의 강물을 방류한다. 나는 가끔 그 물결을 거슬러 우화집의 한 조각을 되찾으려 한다. 물고기를 잡은 듯이 기뻐하며 퍼질러 앉아 쏠쏠한 재미를 느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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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정저축, “좋아요” 프로그램 정보
    감정저축, “좋아요”
    칼럼명 감정저축, “좋아요”
    집필자 백종화 (이화여대 대학원 아동학과 겸임교수 / 백종화심리상담센터 소장)
    내용 책은 나의 오랜 친구입니다. 책과의 첫 만남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두 권의 그림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쾌걸 조로』와 『백설 공주』. 이 두 권의 그림책을 아직도 기억하는 것은, 집에 책이라고는 오로지 두 권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재미있어서 읽었다기보다는 심심해서 뒤적뒤적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뒤적뒤적하기만 했는데, 신나게 갖고 놀았던 갖가지 장난감보다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신기합니다. 그래서 책을 나의 가장 오랜 친구라고 말합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읽었던 책 중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책은 『해와 달의 합창』입니다. 저자와 내용이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여자주인공에게 가졌던 아주 아린 느낌은 진하게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그 주인공을 생각하면 울먹울먹해지면서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놓인 여주인공이 불쌍했고, 착한 마음을 잃지 않고 나쁜 길로 가지 않은 것이 눈물 날 정도로 기뻤던 것 같습니다. 착한데 너무 힘들어서 나쁜 길로 가는 것이 가장 마음이 아프고 속상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이야기의 주인공을 친구처럼 가깝게 느꼈나 봅니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주로 소설을 읽었습니다. 작가 황순원, 이효석, 루이제 린저, 토머스 하디, 펄 벅의 소설을 읽으면서 수많은 상상을 했습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면서, 여러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슬픔에 젖거나 우쭐해지기도 하고, 아파서 죽거나 세상에서 제일 멋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니 그야말로 혼자서 ‘소설을 썼던’ 것입니다. 다행인 것은 내가 주인공인 나의 소설은 아무도 읽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비밀이 보장되고, 아무도 방해하는 사람이 없어 편하게 상상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책은 내가 주인공이 되어도 질투하지 않고 비웃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 주면서, 나를 다양한 장르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중학생 때까지는 책을 아주 많이 읽은 것은 아닙니다. 주로 방학에 할 일이 없어서 집에서 뒹굴뒹굴하면서 읽었던 책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감동받고, 그 감동을 마음에 간직하면서 책은 서서히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몇 권의 책으로 시작했던 책의 감동은 점점 더 많은 책을 읽게 했고, 때로는 3~4일을 밖에 나가지도 않고 책을 읽게도 했습니다. 더 많은 책을 읽고 싶어서 친구들과 책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감동은 더욱 커졌습니다. 함께 주고받은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더 친해지고, 특별한 세상에 함께 와 있는 것 같아 서로 행복해했습니다.

    책이 주는 감동과 행복을 경험했기에 지금은 늘 책을 갖고 다니면서 틈틈이 한 줄이라도 읽고, 종종 대여섯 권의 책을 한 번에 사서 책 속에 빠져 보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책을 읽으면서 감동받고, 그 감동은 자동적으로 마음에 저축이 됩니다. 그리고 힘들거나 외롭고 심심할 때는 마음에 저축한 감동을 찾아서 다양하게 사용합니다. 책의 감동 효과는 꽤 좋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경험하는 감동저축! 그것은 특별히 청소년기에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마음의 저축입니다. 2017년 어느 날 뒹굴뒹굴하면서 읽은 책의 감동이 마음에 저축되어 어느 순간 예상하지 못했던 특별한 선물을 줄 수도 있습니다. 우연히 떠오른 책 속의 글귀, 어느 날 유난히 생각나는 책 속의 주인공, 형광펜으로 밑줄 그었던 책의 제목, 내가 사랑하게 된 작가로 인해 우리의 인생은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달빛 고운 어두운 밤, 해가 떠오르는 신선한 아침,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어떤 순간에도 책은 우리에게 필요한 특별한 감동을 줄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손에는 무엇이 있나요? 그것이 책이라면 진정 “좋아요.”입니다. 책과 친구가 되어 책과 가까이 지내고, 책이 주는 따뜻하고 신기하고 가슴이 뻐근해지는 감동을 꼭 경험해 보세요. 두 가지 방법을 함께한다면 책 읽는 감동이 더욱 진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는 책을 읽기 시작한 날짜와 자신의 이름을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감동받은 글귀에 진하게 밑줄 긋는 것입니다. 내가 책에 남긴 ‘날짜, 이름, 밑줄’의 흔적이 훗날 여러분의 삶에 감동을 더하여 줄 거랍니다.


    백종화는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아동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화여대 대학원 아동학과 겸임교수로 있으며, 백종화심리상담센터에서 성장과 치유의 심리상담을 하고 있다. SBS TV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전문자문위원으로 2005~2015년 10여 년간 활동했고, 저서로 『공부는 나의 힘』, 『초등생 성적보다 공부습관이다』, 『정신건강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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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먹는 게 남는 것? 읽는 게 남는 것! 프로그램 정보
    먹는 게 남는 것? 읽는 게 남는 것!
    칼럼명 먹는 게 남는 것? 읽는 게 남는 것!
    집필자 조진호 (민족사관고등학교 생물교사/과학저술가)
    내용 ‘먹는 게 남는 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현재 과학을 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표현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할 수 있어요. 영양가 높고 맛있는 음식은 분명히 우리 몸에 에너지를 주고, 몸을 구성하는 물질들을 합성하도록 하는 필수적인 것이지요. 무럭무럭 자라나는 어린 친구들에게는 균형 있는 음식 섭취는 남는 것 그 이상입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음식 속의 모든 물질적 요소는 몸에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기도 해요. 몸을 이루는 모든 원자는 채 한 달도 못 머물고 다른 원자로 죄다 교체됩니다. 단 하나의 예외적인 신체 부위가 있는데, 바로 치아입니다. 치아를 구성하는 원자들은 꽤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왜 음식 얘기를 하고 있냐고요? 바로 이 말, ‘읽는 게 남는 거다’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음식이야 잠시 머문다손 쳐도 어쨌거나 머물다 가는데, 책을 읽으면 무엇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일까요? ‘남는다’라는 말을 우리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가치 있는 영향을 주는가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겠네요. 이런 측면에서 책만큼 우리에게 영향을 막대하게 주는 것, 남는 것은 찾아보기 쉽지 않아요. 뭐 사실 이 이야기는 그다지 특별하지도 않고, 살면서 많이 들었던, ‘책은 참 유익하다’는 이야기 같지요? 맞아요. ‘책 읽어라’라는 말을 여러분은 참 많이 듣고 살아요. 강조하지 않아도 하루 중에도 많은 책을, 정확히는 지겹도록 많은 글을 접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잉크로 쓰인 글보다는 요즘은 전자파를 내는 디지털 글자를 많이 접하고 있지요. 글을 읽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늘 ‘읽고 있다고!’라고 대꾸하고 싶을 정도일 겁니다. 자~ 그래도 한번 생각해 보자고요. 여러분이 읽은 수많은 글 중에서 지금 당장 이 순간, 기억나는 내용, 작은 문구라도 있는지요. 글의 홍수 속에 떠밀려 살고 있지만, 우리는 대부분 글을 그저 지나쳐 버립니다. 감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거나, 나에게 유용하지 않거나, 여러 가지 까닭이 있겠지요.
    하지만 단언컨대, 책만큼 가치 있으면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건 거의 없습니다. 살면서 마주하는 가치 있는 책, 나에게 감정적으로 동요를 주고, 웃게 하고, 눈물짓게 하고, 한동안 멍 때리게 할 만큼 통찰력을 주는 책. 그런 책만큼 나의 삶에 큰 방향을 제시하고, 힘을 북돋아 주는 것은 없습니다. 책 외에 그런 것을 더하자면 좋은 여행과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 정도일까요.
    어렸을 때 읽었던 몇 권의 동화책을 여전히 기억해요. 『위대한 취후의 왕두들』이라는 판타지 소설은 한동안 나를 상상의 세상에 머물게 했어요. 깊이 상상하면, 진짜 그런 세상으로 갈 수 있다는 확신까지 했을 정도로 오랫동안 헤어 나오질 못했지요. 중학교 때 본 『코스모스』라는 책은 과학을 사랑하게 만들었지요. 그 책이 만들어 준, 우주에 대한 감동은 학교에서 과학 시간에 배운 것보다 훨씬 생각의 지평을 넓혀 주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지금 제가 과학책을 쓰고 있는 것은 아마도 그 순간이 시작점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엘저넌에게 꽃을』이라는 SF소설은 과학이 이토록 따뜻하고 감동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어요. 열거하자면 너무 많은 책이 있지만, 내가 만난 주옥같은 책들은 지금의 나를 형성했고, 하고 있는 말과 쓰고 있는 글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 과학 만화책을 만드는 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살면서 읽었던 책들이 고스란히 그 안에 녹아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어요. 책을 읽고 상상 속에서 다녀왔던 세계, 책들이 말하는 어투, 책들이 가르쳐준 많은 지식들……. 이 모든 것이 현재 내가 쓰고 있는 책과 내가 하는 말로 그대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나를 구성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뼈와 살이 있을 테지만, 나의 고유한 생각과 말, 글이 바로 나의 핵심 아니겠어요?
    책은 왜 이토록 영향력이 클까요. 지금은 책을 쓰고 있기 때문에 예전보다 그 이유를 조금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책 한 권을 쓰기 위해서는 끝없이 고민해야 하고, 준비를 많이 해야 합니다. 가장 정확하고 정제된 문장을 만들도록 하나하나 최선을 다해야 하지요. 책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기승전결이 있는 탄탄한 내용이 갖추어지도록 수없이 뜯어고치지요. 왜냐면 독자들을 만나야 할 테니까요. 상대방을 앉혀 놓고 대화한다는 느낌으로 글을 쓰는데, 일상 대화보다 훨씬 더 완성도 높은 대화를 한다는 것이 책을 쓰는 일이에요. 이것은 저자의 입장이고, 그것을 보는 독자의 입장 역시 굉장히 적극적인 자세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가 TV나 영화를 볼 때는 편하게 앉아서 방관자의 입장에 있지요. 그에 반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마치 운동이나 여행을 하는 것처럼, 힘을 써야 하고 집중하는 행위예요. 적극적으로 경청해야 책이 말하는 바를 똑똑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책을 쓰고, 독자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양자가 최선을 다하는 행위입니다. 책을 쓰고 읽는 것을 우리는 그저 익숙한 일상의 일로 여기지만, 이것은 수천 년 전에 발명하여 발전시킨, 인류가 탄생시킨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정 마술 같은 발명이지요. 책은 시공을 초월해서 과거의 사람과 미래의 사람을 이어주는 정교한 통신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가치 있는 책들은 고전으로 남아서 오랫동안 사랑을 받을 테지요.
    좋은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에요. 몇 시간 동안 손에 책을 들고, 집중하기 위해서는 체력이 꽤 필요해요. 그렇기에 몸의 컨디션이 좋은 시간에 안락한 의자에서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기를 권합니다. 배고파서도 안 돼요. 책은 잠자기 전 피곤할 때 읽는 것도 안 돼요. 책을 읽는다는 것은 큰 투자가 들어가는 럭셔리한 행위라고 할 수 있지요. 그래도 책을 읽는다는 것은 들이는 힘에 비해서 훨씬 많은 것을 챙겨 올 수 있어 이익이 많이 남는 일입니다. 책만큼이나 가치 있는 행위로 여행,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을 꼽았습니다. 여행 이야기가 나왔으니 『나를 부르는 숲』이라는 여행 책을 소개할게요. 꼭 읽어 보세요. 후회 안할 겁니다. 여행과 사람 만나기, 이것들을 최대한 시간 내서 많이 하길 바랍니다. 여행에 비해서 독서는 마음만 먹으면 즉시 할 수 있고 비교적 저렴한 비용이 든다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 다시 한번 강조해요.
    우리는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합니다. 그날 있었던 일, 어제 봤던 TV 프로그램 등 주제는 차고 넘치지만 책에 대해서 얘기할 때만큼, 가슴 두근거리는 대화가 없습니다. 만일 그런 대화를 많이 못 해 봤다면, 당장 한번 해보세요. 정말로!
    공부하느라 지친 청소년들에게 책은 일종의 유용한 도구 정도로 생각될지 모르겠어요. 나에게 지식을 주고, 시험 성적도 올려 주는 그 무엇.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 선생님이기도 한 저는 그런 상황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으면, 지식도 많이 쌓을 수 있고, 글솜씨나 말솜씨도 세련돼지죠. 논술을 중시하는 요즘의 입시에서 장점이 될 수도 있고, 그야말로 그 사람을 성공하게도 하고, 멋지게 만들어 줄 거예요. 하지만 이런 이유로 책을 권하는 것은 책에 대한 일종의 무례한 평가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요. 당연히 위에서 말한 효과를 발휘할 것이 분명하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효과입니다. 책은 최고 품질의 즐거움이자, 쾌락이며,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게임이나 다른 무엇을 열심히 했을 때 받을 수 있는 비난과 눈치를 피할 수도 있고요. 알면서 왜 책을 안 볼까요? 글을 본다는 것은 머리를 많이 써야 하고, 체력과 시간이 소요되는, 꽤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지요. 요즘 세상에 편한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좋은 책을 찾고, 만나서 기꺼이 힘을 써 보세요. 거기에 황금보다 값진 진리가 있고, 사자의 심장 같은 용기가 있고, 꿀 같은 달콤함이 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제안에 대한 책임은 질 수 있어요. 절대 거짓말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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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진호
    현 민족사관고등학교 생물 교사이며, 과학 저술가. 『게놈 익스프레스』, 『어메이징 그래비티』, 『판타스틱 과학책장』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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