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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National Library for chldren and young adul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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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칼럼은 2006년 12월 23일부터 사회 저명인사와 평론가, 작가, 칼럼니스트 등 각 분야 전문가가 청소년에게 책·독서에 대한 단상 및 독서의 중요성 등에 대한 칼럼을 집필하고 있으며, 「도서관이야기(월간)」를 통해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독서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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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찍 읽었더라면 좋았을 책들 프로그램 정보
    일찍 읽었더라면 좋았을 책들
    칼럼명 일찍 읽었더라면 좋았을 책들
    집필자 서민 (단국대 의과대학 교수)
    내용 『온도계의 철학』. 이 책의 저자 장하석은 내 초등학교 동창이다. 동창 중 유명인이라고 할 만한 친구는 장하석과 나밖에 없는데, 내 인지도가 전공과 그다지 관계없는 방송 출연 덕분인 반면 장하석은 자기 분야를 열심히 파고든 끝에 이 자리에 올랐으니 훨씬 더 대단하다. 책 얘기를 하기 전에 저자의 이력을 간단히 소개하는 건 이 때문이다. 장하석은 중3 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크게 감동하고, 물리학을 자신이 평생 전공할 과목으로 정한다. 당시는 번역을 썩 뛰어나게 하던 때가 아니었기에, 장하석은 원서를 직접 구해서 읽는다. 그렇게 열 번을 읽고 난 그는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을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간다. 칼텍이라는,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한 곳에서 물리학을 전공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물리학의 한계를 느꼈고, 과학과 철학을 접목한 과학철학을 자신이 걸어갈 길로 정한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런던대학교 교수가 되며, 43세 때인 2010년에는 그 유명한 캠브리지 대학의 석좌교수가 된다. 석좌교수란 그 분야에서 혁혁한 업적을 쌓은 이를 교수로 모시는 제도인데, 그 나이 또래에 석좌교수가 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그의 이력에는 눈여겨볼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코스모스』를 읽고 자신의 앞날을 정했다는 점이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할 것인가 결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 이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국어를 배우다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하는 건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교육 과정은 의무고, 시험도 치러야 한다. 억지로 외워야 하는 과목을 평생 전공하고 싶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자신이 우연히 읽은 책의 주인공이 과학자라면 어떨까? 그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책을 읽다 보면 과학자로 사는 것도 멋진 일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코스모스』는 칼 세이건이 노골적으로 독자들을 유혹하는 책이다. “너희들, 우주에 한번 와 봐. 아주 멋지다고. 외계 생명체도 있을 거야.” 장하석은 이 유혹에 넘어갔다. 그렇다고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다 과학자가 되는 건 아니다. 책은 그 사람에게 있는 과학 DNA를 깨어나게 할 수는 있지만, 없는 DNA를 심을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 자신의 DNA가 어떤 쪽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야 한다.

    둘째, 아니다 싶으면 그만둘 수 있는 용기다.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 거야 그리 대단할 건 없지만, 자신의 꿈이었던 물리학을 그만두는 건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나 같으면 물리학에 애정이 없어도 ‘칼텍 물리학 학사 타이틀’을 우려먹으며 살았으리라. 그런데 장하석은 그렇게 하는 대신 중간에 철학으로 전공을 바꿨고, 스탠포드에서 박사 학위를 받는다. 그럼 그때까지 배운 물리학은 아깝지 않느냐 싶지만, 장하석은 물리학에 철학을 접목해 과학철학의 거장이 된다. 그가 쓴 『온도계의 철학』은 과학철학이라는 게 어떤 학문인지 알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지난 6년간 영어로 저술된 최고의 과학 저작물에 수여하는 상’인 ‘러커토시상(Lakatos Award)’을 받았다. 뛰어난 과학 전문가들이 추천했으니 좋은 책인 건 확실하다. 하지만 내가 이 지면을 빌려 『온도계의 철학』을 추천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과학적 사고를 익히는 데 이 책만큼 좋은 교재는 없기 때문이다.

    과학적 사고란 무엇일까? 포털을 찾아보니 여러 버전의 설명이 나와 있지만,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과학적 사고는 주어진 모든 것을 의심하고, 믿음의 근거를 찾으려는 태도.’ 예를 들어 변 색깔이 황갈색인 이유가 뭘까? 흰밥, 미역국, 백김치의 조합으로 식사를 해도, 자장면을 먹어도 변은 여전히 황갈색이다. 매일 변을 보면서도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원래 그래.’라든지 ‘이해 못 하면 외워.’라는 말에 너무도 익숙해서다. 그러다 보니 변 색깔이 변하면 왜 이럴까 당황해하고, 혼자 고민한다. 하지만 우리가 먹은 음식에 담즙과 세균이 섞여서 황갈색이 만들어진다는 걸 안다면, 변 색깔이 변해도 크게 당황해하지 않고 병원을 찾아가게 된다. 수없이 많은 사과가 떨어졌지만 오직 뉴턴만 중력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유일하게 과학적 사고를 했기 때문이다. 『온도계의 철학』의 주제는 ‘물이 100도에서 끓는다.’는 사실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책은 여기에 질문을 던진다. “그 100도라는 건 도대체 누가 정했니?” 이런 질문을 받으면 변 색깔이 변했을 때처럼 당황하게 된다.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온도계의 철학』은 여기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가는데, 이 과정이 제법 흥미롭다. 내가 어릴 때 이 책을 읽었다면 기생충을 이용해 뭔가 대단한 일을 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물론 이 책을 읽는 건 쉽지 않다. 과학만 해도 어려운데, 거기에 철학적인 내용까지 들어가 있으니까. 게다가 설마 했지만 544쪽에 달하는 책 전체가 이것에 대한 내용이다. 읽다 보면 “야, 적당히 좀 하자. 100도를 누가 정했든 그게 뭐가 중요해?”라며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다. 어느 분이 쓴 리뷰다. “화학 전공자인 저도 읽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중간중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직접 자료를 찾아보느라 꽤나 힘들었습니다.” 내가 이 책을 권하는 두 번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 어려운 책을 읽으면 인내심이 길러진다. 사실 과학에서 인내심만큼 중요한 덕목은 없다. 파울 뮐러(Paul Hermann Muller)는 강력한 살충제를 만들기 위해 여러 물질을 합성했는데, 4년간 349번의 실패를 딛고 만든 것이 바로 DDT였다. DDT는 단순히 곤충만 죽인 게 아니라 말라리아처럼 곤충을 매개로 전파되는 질병까지 확 줄여 버렸기에, 뮐러는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말이 쉽지, 4년간 349번의 실패를 거듭하는 건 엄청난 인내심이다. 밀러가 어떤 방법으로 인내심을 길렀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시대에는 『온도계의 철학』이라는, 인내심을 기를 좋은 방법이 있으니 노벨상에 도전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는 게 좋겠다.

    혹시 이 책을 버겁게 느낄 분이 계실까 봐 저자의 다른 책을 추천한다.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는 저자가 우리나라에서 했던 강의를 정리한 책이다. 『온도계의 철학』과 달리 과학에서 중요한 발견들과 그 의미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어서 읽다 보면 마구 과학이 하고 싶어진다. 벌써 과학을 전공하고 있는 내가 그럴진대, 과학의 길에 들어서지 않은 분이라면 훨씬 더할 것 같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과학의 길에 입문하고, 『온도계의 철학』으로 과학적 사고와 인내심을 기른다면, 노벨과학상도 그리 멀지 않다. 아쉽다. 내가 노벨과학상을 타지 못한다면 그건 순전 어릴 때 이런 책이 없었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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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민
    글 쓰는 기생충 박사. 단국대 의과대학에서 기생충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방송활동과 기고도 활발히 하고 있다. 저서로는 『안녕 돈키호테』, 『서민적 정치』, 『똑똑, 상냥한 기생충이 찾아왔습니다』, 『서민의 기생충 콘서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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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물섬으로 떠난 유비, 관우, 장비 프로그램 정보
    보물섬으로 떠난 유비, 관우, 장비
    칼럼명 보물섬으로 떠난 유비, 관우, 장비
    집필자 이우영 (검정고무신 작가)
    내용 사내아이들의 장래 희망은 대통령, 과학자, 장군, 판사. 여자아이들은 어른들 봉양과 남편 내조, 더불어 아이까지 잘 돌보는 신사임당 같은 현모양처가 되는 게 꿈이라고 적어 내던 시절이 있었다. 나의 꿈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다른 친구들이 그런다고 하니까 도대체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판사로 내 멋대로 일찌감치 꿈을 정해 버렸다(지금 생각하면 멋쩍은 웃음만 난다. 공부에 그렇게 취미도 없던 주제에 말이나 되는 희망인가). 그러던 차에 내 꿈을 확 바꾸어 버린 것이 있었으니, 어느 날 아버지가 퇴근길에 사 오신 한 권의 책이 그것이었다.
    그 책의 표지에는 ‘보물섬’이라고 씌어 있었다. 우리가 아는 스티븐슨의 절름발이 해적 실바가 나오는 소설 『보물섬』이 아니라 월간 만화 잡지 「보물섬」이었다(그러고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건 모든 사람의 바이블 같은 책 뿐만은 아닌 것 같다). 두툼한 그 책 속에는 그야말로 신기한 만화와 이야기가 잔뜩 들어 있었다. 빙하를 타고 내려온 둘리가 고길동 아저씨네 얹혀 생활하는 이야기인 ‘아기공룡 둘리’(어릴 때는 둘리와 친구들에게 못되게 한다는 생각을 했던 집주인 길동이 아저씨.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길동이 아저씨가 정말 대인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군식구들을 내쫓지 않고 거두어 같이 살았으니 말이다). 조선 시대 역사 이야기를 서당 훈장님이 재미있게 풀어내는 윤승운 선생님의 ‘맹꽁이 서당’,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엄마를 생각하며 열심히 트랙을 뛰어 훌륭한 선수가 되는 이야기를 담은 명랑 순정 만화 ‘달려라 하니’ 등등 일단 책장을 펼치면 끝까지 보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정도였다.
    지금이야 웹툰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시대라 남녀노소 누구나 만화를 접하고 심지어 많은 청소년의 장래 꿈으로까지 자리를 잡고 있지만 1980년대 당시엔 ‘만화책은 나쁜 것이야’란 이미지가 강해서 아이들이 만화책을 보려면 부모님의 눈을 피해 몰래몰래 보던 시절이었기에 부모님이 손수 만화 잡지를 사다 주시는 경우는 내 기억으로는 흔한 일은 아니었다. 아들이 훗날 만화가로 먹고살게 될 줄 아셨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한번 맛을 들이고 나니 부모님이 사 주시지 않으면 직접 돈을 모아 책을 사기도 했다. 자꾸 보다 보니 나도 한번 그려 볼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고 그렇게 만화 습작이 시작되었다. 감명 깊었던 영화 ‘죠스’를 패러디한 만화가 첫 습작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그때부터 내 장래 희망은 만화가로 굳어져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습작 시간이 마구 길어져 방학 내내 엉덩이 아픈 줄 모르고 하루 9시간씩 만화만 그려 댔다. 「보물섬」에 4컷 만화를 투고해 실리기도 했다. 부모님은 그때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아시고 공부 안 하고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꾸중하시고 원고를 감추고 하셨지만 이미 만화의 재미에 빠진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만화를 그릴 때만큼은 나는 조물주나 다름없었다. 현실에서야 공부도 중간, 쌈도 못하는 그저 그런 아이였지만 만화 속에서만큼은 내 캐릭터들을 내 손끝에서 울게도 웃게도 만들 수 있었으니 조물주와 다를 게 무어겠는가? 결국 만화가를 꿈꾼 지 7년 만인 1992년 4월 「소년챔프」 제1회 신인작가 공모전에 우수상으로 입상, 7월부터 ‘검정고무신’을 연재하게 되었다. 그해 12월 18일, 다음 날이 군 입대일인데도 나는 만화를 그리고 있었다. 출판사에서는 만화 연재의 중단을 막고자 훈련소를 거쳐 자대를 배치 받고 자리 잡는 시간까지의 세이브 원고를 요구했고 나는 10주치의 원고를 미리 그려 놔야 했다. 한때 만화를 반대하시던 아버지는 옆에서 캐릭터들의 머리를 붓으로 칠하며 도와주셨다(지금이야 컴퓨터 작업이지만 그때는 모든 걸 손으로 작업했다).
    “놀지도 못하고 가는구나.”
    “괜찮아요.”
    서로 별다른 대화 없이 묵묵히 작업에 몰두했던 시간들. 결과적으로 군대에서 만화 연재를 이어 갈 수는 없었다. 개인 작업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자대 배치 첫날부터 깨졌다. 애초에 이등병의 바람이 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연재가 중단되지는 않았다. 편집부에서 만화를 그릴 줄 알던 두 살 터울 친동생에게 ‘형 대신 네가 연재해라’라는 제안을 했고 동생이 내가 군대 있는 시간 동안 잘 그려 주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인기도의 상승으로 페이지당 가격을 2만 3천 원에서 4만 원까지 올려 놓고 페이지도 8페이지에서12페이지까지 늘려 놓았다. 이후 나는 제대하고 동생은 입대를 하면서 다시 바통을 넘겨받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부모님께 감사드릴 일이 참 많다. 처음 만화를 접하게 해 주셨고 이런저런 책을 많이 사다 주셔서 책 읽기의 즐거움도 알려 주셨으니 말이다. 「보물섬」에 이어 머리를 스치는 책이 또 하나 있다. 모처럼 주말에 일찍 들어오신 아버지가 박스 하나를 내미셨다. 그 속에 들어 있던 것은 16권짜리 『삼국지』 전집이었다. 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박스를 열었을 때 느꼈던 새 책들의 냄새. 뇌리에 진하게 박힌 그 냄새는 책 읽는 재미로 빠져들게 해 주었다. 작고하신 신동우 화백의 삽화가 글과 잘 어울려 있어 그야말로 밥 먹는 것도 잊게 해 주었던 『삼국지』. 유비, 관우, 장비, 조자룡, 그리고 제갈공명 등 캐릭터 하나하나가 살아 있어 손을 뗄 수 없었고 어느 정도 외울 만큼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제갈공명이 오장원에서 사마의와 긴 대치 끝에 병으로 죽을 때, 너무 슬퍼서 울기도 했었다. 오죽하면 다시 이 책장을 펼쳤을 땐 제갈공명이 살아나는 이야기로 바뀌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을까. 지금도 이 책들은 동생 집에 보관되어 있다. 옛 기억을 떠올리다 보니 문득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부모님은 어려운 살림에도 우리 형제를 위해 책을 참 열심히 사다 주곤 하셨는데(과학 전집 시리즈, 컬러 학습 대백과 등 모두 40년 가까이 보관 중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나 하는 생각에 말이다. 요즘은 지역 도서관들이 잘 발달해 있다. 아이들 데리고 놀이 삼아 한번 찾아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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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운명을 바꿔 놓은 세 권의 책 프로그램 정보
    내 운명을 바꿔 놓은 세 권의 책
    칼럼명 내 운명을 바꿔 놓은 세 권의 책
    집필자 김슬옹 (『세종 한글로 세상을 바꾸다』의 저자 / 『훈민정음 해례본』 인류 최초 복간본 해설자.)
    내용 내 운명을 구한 아버지 일기장
    2013년 청소년들을 위한 책 『열린 눈으로 생각의 무지개를 펼쳐라』라는 책을 내면서 앞머리에 이렇게 적었다. “갈 길 몰라 헤매던 청소년 시절에 힘을 북돋아 주셨던 수원중학교 은사님이셨던 홍승복 스승님과 고등학교 때 한글의 꿈을 키워 주셨던 오동춘 스승님께 이 책을 바칩니다.”
    두 분 덕에 질풍노도와 같은 사춘기 시절의 고민을 이겨 나가며 한글학자의 꿈을 키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3학년이 되자 벗들은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연합고사 준비에 정신이 없었지만 고등학교 진학조차 어려운 나는 집안의 가난을 원망하는 처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나는 아버지 일기장을 읽게 되었다. 서랍을 뒤지다가 파란 펜글씨로 써 내려간 아버지의 젊은 시절 일기장을 보게 된 것이다. 6.25 전쟁 후 누구나 어려웠던 시절, 온갖 고생하며 인생 풍파를 이겨 나가기 위해 애쓴 일들이 한글로 촘촘히 적혀 있었다. 이 일기 덕에 가난한 집안 처지를 원망하는 마음보다 내 스스로 인생을 열어 가리라는 새 힘이 솟게 되었다. 그러던 터에 중 3 담임이셨던 홍승복 선생님께서 국비로 운영되는 철도고등학교 진학을 도와 주어 공무원의 꿈을 꾸게 되었다. 막상 서울 용산에 있던 철도고등학교 업무과에 진학하고 나니 또 다른 고민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학교 공부가 적성에 안 맞는 것이었다. 여객규정, 객화차규정 등 철도 공무원이 되기 위해 배워야 하는 과목들이 모두 법전을 외우듯 해야 하는 공부인지라 체질에 맞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학교 공부보다는 토머스 하디의 『테스』 같은 소설이나 「학생중앙」 같은 청소년 잡지에 더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또 학교에 기숙사가 없어 지방에서 올라온 몇몇 친구는 신문 보급소에서 신문을 배달하며 다녔다. 이 친구들 덕에 점심시간마다 신문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었는데 이때는 한자를 더 많이 쓰던 시절이었다. ‘아기’라는 쉬운 말보다는 ‘영아(?兒)’라는 말을, 그것도 한자로 적던 시절이었다. 그런 신문을 보며 대중적인 정보를 주고받는 신문에서조차 세종대왕이 만든 쉬운 한글을 왜 무시할까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내 진로를 바꿔 놓은 한 권의 책
    그러던 중에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1977년 10월쯤에 「학생중앙」 잡지에서 한글운동, 국어운동 동아리원들을 모집하는 작은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그래서 가입한 모임이 한글학회 부설 ‘전국국어운동고등학생연합회’였다. 이 모임에서 벗들과 함께 우리말과 글에 대한 토론과 계몽 운동 등을 하게 되었다. 이때 내 운명을 바꿔 놓은 책을 만나게 된다. 이 모임 지도교사이셨던 오동춘 선생님 추천으로 외솔 최현배 선생이 쓴 『우리말 존중의 근본 뜻』(정음문화사)이라는 책을 읽고 토론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의 첫머리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배달말(한국어)은 배달겨레의 상징이며, 배달 정신의 표현이며, 배달 문화의 총목록이다. 우리는 겨레를 사랑하며, 또 그 문화를 사랑하며, 따라 그 말을 사랑한다.”
    이 책을 읽으며 한자를 마구 섞어 쓰는 신문의 모순을 깨닫고 세종의 꿈, 한글의 꿈을 실천하는 우리말글 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 꿈을 더욱 굳히기 위해 한자로 적을 수 없는 순우리말 이름을 짓게 되었다. 원래는 김용성(金庸性)이라는 한자식 이름이었는데 ‘슬기롭고 옹골찬 우리말글의 옹달샘’이 되자는 뜻에서 ‘슬옹’이라 지었다. 이 이름을 빨리 알리고 싶어 2학년이 되자마자 아예 새 이름표를 바꿔 달고 학교에 갔다. 친구들이 환호해 주었지만 호적을 바꾼 것은 아니므로 오래 달고 다닐 수는 없었다. 결국 대학 2학년 때인 1983년에 서류 재판을 통해 호적을 바꿔 온전한 내 이름이 되었다. 대학에서는 외솔 선생님이 쓰신 『우리말본』, 『한글갈』을 읽으며 한글 전문학자로서의 꿈을 더욱 다지게 되었다. 『우리말본』은 주시경 선생의 뜻을 이어 우리말 문법을 체계화한 책이고 『한글갈』은 한글의 역사를 장중하게 풀어낸 책이다. 『우리말 존중의 근본 뜻』과 함께 외솔의 3대 저서가 우리말글의 꿈을 이루는 밑거름이 된 셈이다.

    평생의 동반자 『훈민정음 해례본』
    대학 시절에는 세종대왕이 1446년에 직접 펴낸 『훈민정음 해례본』을 공부하게 되었다. 고 1 때 세종을 닮은 학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지 5∼6년이 흘러 세종대왕의 꿈이 담긴 책을 직접 보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쉬운 문자로 누구나 지식과 정보를 나누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맘껏 표현하며 편안하게 살라는, 정말 상식적이지만 가슴 벅찬 인류 보편의 꿈을 담고 있었다. 곧 세종이 직접 저술한 본문에는 “내가 이것을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라고 했고 이 책 서문 격인 ‘정인지 서’에서는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자연의 문자가 있다.”라고 하면서 “슬기로운 사람은 하루아침을 마치기도 전에, 슬기롭지 못한 이라도 열흘 안에 배울 수 있다. 이 글자로써 한문 글을 해석하면 그 뜻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글자로써 소송 사건을 다루면, 그 속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라고 한글의 우수성과 효용성을 자신감 있게 선언하고 있다.
    2005년에 서울대는 청소년들을 위한 인류 고전 200권을 발표하면서 이 책을 놓치는 실수를 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나는 이 책이 왜 인류의 빼어난 고전인가를 청소년들에게 들려주는 책, 『28자로 이룬 문자혁명 훈민정음』(아이세움)이란 책을 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이제 인류가 가치를 인정한 책이 되었다. 유네스코는 1997년에 이 책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했고, 이보다 앞서 1989년에는 훈민정음 발명자이자 해례본 저술 책임자인 세종의 이름을 딴 세종대왕상을 문맹퇴치 공로자들을 위해 제정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양반 사대부들이 싫어한 까닭에 일찍 희귀본이 되었고 1940년에 기적처럼 경북 안동에서 원본이 발견되어 간송 전형필 선생이 소장하게 되었다. 2015년 간송미술문화재단은 교보문고와 함께 이 책을 똑같이 만든 복간본을 펴냈다. 영광스럽게도 필자는 복간본 제작 학술 책임과 해설서 집필을 맡았다.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에 있는 최첨단 수장고에서 유족의 배려로 이 책을 직접 보았는데 그때는 세종대왕을 직접 만난 기분이었다. 아버지의 일기장, 외솔 최현배의 『우리말 존중의 근본 뜻』,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해례본』이 세 권의 책을 만난 행운과 기쁨을 우리 청소년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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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솝 우화』와 성경과 만화책 프로그램 정보
     『이솝 우화』와 성경과 만화책
    칼럼명 『이솝 우화』와 성경과 만화책
    집필자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내용 『이솝 우화』는 성경과 불경, 코란에 버금가는 책이 아닐까. 문명의 꽃이 문화 예술이고 열매가 과학 기술이라면, 그 뿌리는 종교 혹은 신화라는 게 대다수 인문학자의 의견이다. 나는 특정 종교를 따르지 않는 사람이지만, 신화와 문학 속에서 신의 역할이 꽤 중요하기에 신성한 존재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신이 없다면 신을 발명해야 하는 게 인간이라고 하지 않는가.
    특정 종교가 지배하는 환경에서 자라나는 아이는 관념이나 상징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이야기의 틀에 익숙해진다. 그 아이에게 경전은 세상을 살아가는 가이드북이 된다. 종교의 그늘을 모르는 아이는 그런 경전도 없이 경험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익힌다. 물론 그런 아이에게 경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굳이 경전이란 딱지를 붙이지 않아도 지혜의 책이 있기 마련이다.
    이솝 우화집. 나는 삶의 지혜를 가르친 책을 꼽으라면 이솝 우화집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뒤 주로 만화책을 뒤적였지만, 그 와중에도 정색하고 독서라는 것을 해야 했기에 심각하게 읽은 동화책을 떠올리라고 하면, 이솝 우화집을 빼놓을 수 없다. 누구나 잠들기 전 어른으로부터 옛날이야기 듣기를 유난히 좋아했던 유년기의 기억이 있다. 한글을 깨우친 뒤 읽기 시작한 책은 그러한 이야기 듣기의 방식으로 머릿속에 흡수되거나 가슴에 심어지기에 아련하지만 묵은 향내를 오래도록 풍긴다. 『이솝 우화』는 그런 식으로 어린 시절의 나를 사로잡았고, 지금도 무릎을 치게 하는 재치의 묘미를 환기해 준다.
    나는 묘하게도 『이솝 우화』를 떠올릴 때마다 『어린이 구약 성서』가 기억의 갈피 속에서 아른아른 솟아나는 것을 느낀다. 『이솝 우화』를 즐겨 읽던 때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어린이를 위한 구약 성서도 읽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 내가 읽은 『어린이 구약 성서』는 선교용으로 제작된 듯하지만, 나에겐 오로지 재미있는 옛날이야기 책이었을 뿐이다. 신앙이 아니라 삶의 지혜를 곁들인 이야기 모음집이었다. 『이솝 우화』가 그러하듯이. 『이솝 우화』는 신앙이 없는 아이에게 경전이었다.
    내가 어린 시절에 읽은 이솝 우화집은 당연히 지금 내 곁에 없다. 다행히 책꽂이에 낡은 이솝 전집은 있다. 영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유종호 선생님이 번역한 책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솝 우화』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는 아주 짧다: 배고픈 여우 한 마리가 포도송이를 따려 했습니다. 나무를 기어 올라가는 포도넝쿨에 달려 있는 것인데 너무 높이 달려 있어 뜻을 못 이루었어요. 여우는 그 자리를 뜨고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아직 익지도 않은걸, 뭐.”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는 자기 합리화의 맹점을 지적하는 심리학 이론을 재미있게 풀이하는 예화로 동원되기도 한다. 어린 내가 심리학을 생각했을 리가 없다. 나는 우화를 읽으면서 여우의 표정 변화를 상상했기에 더 재미있어했다. 배고픈 여우가 포도를 봤을 때 뻔쩍 뜨인 두 눈, 나무를 타고 올라가면서 침이 가득 고였을 입가의 미소, 자꾸만 나무에서 미끄러질 때 일그러진 얼굴, 마침내 포기하곤 주변을 슬쩍 훑어보곤 포도를 등 뒤에 놓고 떠나며 뻔뻔하게 포도를 깎아내리기 위해 삐죽거리는 주둥이. 이 모든 표정과 행동이 그 무렵 내 의식을 지배하던 만화책의 컷들처럼 연속해 떠올랐다. 처음 읽고 나선 절로 피식 웃음이 나왔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나 그 웃음의 복잡한 의미는 나중에 커 가면서 생각하게 되고, 우화의 해석도 순박한 단계를 지나 복잡해졌다. 이 우화는 우습다. 그 웃음은 타인의 불행에서 온다. 동시에 그 불행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타인의 자기 위로가 가당찮은 것이기 때문에 웃음을 유발한다. 그런데 타인의 불행은 비극에 속하지만, 이 불행의 우화는 거꾸로 희극이 된다. 독자가 연민을 보내야 할 불행의 주인공이 스스로를 속이기 때문이다. 독자는 정직하지 못한 주인공을 동정하지 않는 법. 그를 비난하기 위해 웃어 버린다. 그래서 이 우화는 우스꽝스런 심리 드라마가 된다.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는 인생이 비극과 희극 어느 한쪽으로만 쏠린 게 아닌, 희비극이란 것을 재치 있게 일러준다. 어린 시절에 내가 그런 의미를 조숙하게 깨달은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처음 읽고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대신 다행히 피식 헛웃음을 던졌다는 것, 그로 인해 조롱하는 법을 배웠다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그랬을까. 아마 지금껏 살아오면서 현실에 진지하게 접근하기보다는 냉소와 조롱을 던지곤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물러선 경우가 더 많았던 것은 아닐까.
    몇 해 전 노벨문학상과 관련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해마다 한국 문단과 언론이 노벨문학상 발표에 귀를 기울이는 게 가장 성대하지만 덧없는 문학 축제가 된 듯한 느낌이다. 평소 한국 문학에 아무런 애정도 없는 사람도 마치 올림픽 메달 소식을 기다리듯 관심을 표명하는 게 반갑지도 않고 씁쓸하기만 하다. 노벨상을 향한 짝사랑도 지겹고, 번번이 수상의 기쁨이 돌아오지 않을 때마다 “노벨상이 문학의 전부는 아니다.”라는 점잖은 소리에도 짜증이 난다. 그래서 나는 신포도를 외면한 여우가 “저 포도는 맛이 없을 거야.”라며 노벨문학상에 콧방귀를 뀌곤 잊어버리려 하는 한국 문단을 안쓰러워하는 칼럼을 썼다. 그동안 내가 뜻한 대로 이루지 못한 일이 많았고, 그럴 때마다 신포도를 향한 욕망을 애써 부정하는 태도를 보였던 경험이 칼럼 속에 투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어릴 때 읽은 우화 속의 여우가 어느덧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닮았다는 것을 깨달으며 애처롭게 나이를 먹어 간다.
    나는 2000년대 초 프랑스 파리에서 특파원으로 일했다. 그때 딸아이를 현지의 공립 초등학교에 보냈다. 아이가 9살 때 학교에서 배운 시를 집에 와 암송했다. 라퐁텐의 시였다. 『이솝 우화』를 시로 재구성한 것이었다. 여우와 까마귀 이야기였다. 너무 잘 알려진 우화였다: 까마귀가 고기를 입에 물고 나무에 앉아 있을 때 배고픈 여우가 그 밑을 지났다. 여우가 “목소리 고운 까마귀 님, 노래 한 곡 들려주세요.”라고 아첨했다. 우쭐해진 까마귀가 노래를 부르려고 ‘까악’ 하는 순간 고기는 영악한 여우의 발 앞에 떨어졌다.
    고대 그리스의 노예였다고 하는 이야기꾼 이솝. 그는 기원전 6세기 무렵에 살았다. 그러나 그는 이야기의 세계 속에서 불멸의 존재가 됐다. 이솝은 한때 내 어린 날 찾아왔다가 사라졌지만, 잊지 않고 되돌아와 내 아이의 상상 세계 속으로도 흘러갔다. 혈연을 타고 흐르는 문화의 물결이었다. 이야기의 오묘하고 신비로운 현상이었다.
    『이솝 우화』는 멈추지 않는 시간의 강물을 방류한다. 나는 가끔 그 물결을 거슬러 우화집의 한 조각을 되찾으려 한다. 물고기를 잡은 듯이 기뻐하며 퍼질러 앉아 쏠쏠한 재미를 느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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