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전 상태로 변경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National Library for chldren and young adults

메뉴 열기
전체보기

주메뉴

독서칼럼은 2006년 12월 23일부터 사회 저명인사와 평론가, 작가, 칼럼니스트 등 각 분야 전문가가 청소년에게 책·독서에 대한 단상 및 독서의 중요성 등에 대한 칼럼을 집필하고 있으며, 「도서관이야기(월간)」를 통해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독서칼럼

확인

  • 52만 6,500자의 메시지 프로그램 정보
    52만 6,500자의 메시지
    칼럼명 52만 6,500자의 메시지
    집필자 김영수 (한국 사마천학회 이사장 )
    내용 중국 역사 5천 년 중 3천 년을 다루고 있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는 누구나 한 번은 꼭 읽어야 하고 또 읽고 싶어 하는 최고의 역사서이다. 중국의 역사는 물론 중국, 중국인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이기도 하다. 특히 『사기』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을 선고받은 사마천이 성기를 자르는 궁형宮刑까지 자청하고 살아남아 완성한 비운의 역사서이다.
    사마천은 이런 과정을 『사기』의 마지막 권이자 서문에 해당하는 제130 ‘태사공자서’에 비교적 소상히 밝혔는데 다음 두 대목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리하여 정본은 명산에 감추어 두고, 부본은 서울에 남겨 나중에 성인군자들이 참고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해서 총 130편에 52만 6,500자에 『태사공서』(『사기』)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마천은 자신의 성기를 자르고 피를 토하면서 마무리한 역사서의 정본을 왜 감추어 두겠다고 했으며, 또 왜 굳이 책의 글자 수를 밝혔을까?
    사마천은 47세에 직언하다가 황제의 심기를 건드려 옥에 갇혔고, 48세 때는 억울하게 반역죄로 몰려 사형 선고를 받았다. 42세 이후 역사서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던 차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한 사마천은 지독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사마천은 수도 없이 자결을 생각했지만 미처 마치지 못한 역사서 집필이 마음에 걸렸다. 당시 심경을 사마천은 친구 임안任安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러니 제가 법에 굴복하여 죽임을 당한다 해도 아홉 마리 소에서 털 오라기 하나가 없어지는 것(구우일모九牛一毛)과 같고, 땅강아지나 개미 같은 미물과도 하등 다를 것이 없습니다. 게다가 세상은 절개를 위해 죽은 사람처럼 취급하기는커녕 죄가 너무 커서 어쩔 수 없이 죽었다고 여길 것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평소에 제가 해 놓은 것이 그렇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습니다. 이는 죽음을 사용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마천은 살아남아 역사서를 완성하기 위해 죽음보다 치욕스러운 궁형을 자청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역사서의 내용을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 심경을 밝힌 사마천의 고백이다.

    “그러나 제 생각을 다 밝힐 수 없었으며 주상께서도 제 뜻을 이해 못 하시고 제가 이사 장군을 비방하고 이릉을 위해 유세한다고 생각하셔서 결국 법관에게 넘겨졌습니다. 간절한 저의 충정은 끝내 드러나지 못했고, 근거 없이 황제를 비방했다는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집안이 가난하여 사형을 면할 수 있는 재물도 없었고, 사귀던 벗들도 구하려 하지 않았으며, 황제의 측근들은 한마디도 해 주지 않았습니다.”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려다 되레 벌을 받는 일보다 더 참혹한 화는 없으며, 마음을 상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슬픔은 없으며, 조상을 욕되게 하는 것보다 더 추한 행동도 없으며, 궁형을 받는 것보다 더 큰 치욕은 없습니다.”

    사마천은 옥에 갇혔던 3년 사이 모든 것을 다시 생각했다. 권력과 권력자의 속성, 인심과 세태의 냉랭함, 인간의 본질 등에 대해 깊이 고뇌하고 통찰했다. 그 결과 그는 역사를 움직이는 주체가 권력자를 비롯한 일부 지배층이 아닌 수많은 보통 사람임을 확실하게 인식했다. 이에 그는 권력자에게 가차 없는 비판의 붓을 휘둘렀다. 사마천은 역사서의 내용을 이렇게 바꾸었다.
    문제는 이 역사서가 권력자의 심기를 건드려 폐기당할 수 있다는 현실이었다. 사마천이 정본을 감추어 두겠다고 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사마천은 『사기』를 후대에 무사히 전하기 위해 『사기』의 서술에도 각별히 심혈을 기울였다. 권력자와 그 앞잡이들이 자신의 의도를 바로 알아채지 못하게 하려고 온갖 비유법(직유, 은유, 상징, 반어 등)을 동원했고, 특히 깊게 생각하여 통찰하지 않으면 알아챌 수 없게 글자와 문장을 압축했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사기』는 ‘어지러운 책’이란 뜻의 ‘난서亂書’로 불렸다(지금은 ‘어려운 책’이란 뜻의 ‘난서難書’로 불린다).
    그렇다면 글자 수를 밝힌 이유는 무엇일까? 이 숫자는 단순히 『사기』의 글자 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투옥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죽음보다 치욕스러운 궁형을 자청하고 천신만고 끝에 풀려나 『사기』를 완성하기까지 그가 겪은 모든 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결정체에 다름 아니다. 그는 이를 3천 년 통사에 압축해 넣었던 것이다. 52만 6,500자는 사마천의 삶과 정신을 장장 3천 년 역사에 고도로 압축해서 알알이 새겨 넣은 전무후무한 압축 파일이라 할 수 있다. 사마천의 문장이 그 어떤 문장과 격을 달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마천이 글자 수를 밝힌 현실적 까닭은 어쩌면 후대에 자신의 책이 어떤 식으로든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사마천 사후 약 반 세기 뒤 저소손?少孫이 『사기』의 훼손된 부분을 보충한다는 구실로 손을 댔다. 그리고 지금 남아 있는 『사기』 판본의 글자 수는 55만 5,660자로 사마천이 밝힌 52만 6,500자와 약 3만 자의 차이가 난다. 전문가들은 51만 440자 정도를 『사기』의 원문으로 보는데, 그렇다면 후세에 보완된 글자 수가 4만 5,220자에 이르는 셈이다.
    『사기』는 사마천 개인의 삶과 정신세계를 역사에 반영한, 지극히 주관적인 역사서이며, ‘태사공자서’는 그런 의도와 취지를 간결하게 전하는 절묘한 저자 서문이다. 사마천의 이러한 의도를 정확하게 간파한 사람은 많지 않다. 사마천과 『사기』 연구가 이장지李長之가 “지금까지 이렇게 작자 개인의 색채를 갖춘 역사서는 없었다. 사마천 자신의 생활 경험, 생활 배경이 있고, 자기 정감의 작용이 있고, 자신의 오장육부와 심장이 그 안에 있다. 따라서 이 책은 과거와 현재를 포괄하는 역사서일 뿐만 아니라 사마천 자신의 기가 막힌 전기이기도 하다.”라고 평한 것이 그나마 사마천의 이런 의도와 생각을 제대로 짚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태사공자서’는 사마천이 창안한 작가 정신의 발로이며, 『사기』의 정신적 명맥命脈이자 경계와 한계를 뛰어넘는 문장의 격을 만끽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명편이라 할 수 있다. 사마천은 이것을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2000년 동안, 그리고 앞으로도, 어쩌면 영원히 그가 남긴 52만 6,500자의 압축 파일을 풀어야 할 것이다.

    김영수

    한국 사마천학회 이사장. 영산 원불교대학교(현 영상 선학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외국인 최초로 중국 산시성 한성시 사마천학회 정회원이 되었다. 2007년 EBS 특별 기획 ‘김영수의 사기와 21세기’(총 32회)에 출연했고 국내 유수 대기업, 금융기관, 공공기관 등에서 사마천의 『사기』 관련 리더십, 인재론, 인문경영 등을 강의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역사의 경고?우리 안의 간신현상』, 『사마천과 사기에 대한 모든 것』(1,2), 『사기를 읽다』, 『현자들의 평생 공부법』 등이 있다.


    내용보기
  • 책에서 만난 성품 그리고 행복 프로그램 정보
    책에서 만난 성품 그리고 행복
    칼럼명 책에서 만난 성품 그리고 행복
    집필자 이영숙 (한국성품협회 대표)
    내용 아들과 갈등하며 깨달은 ‘성품 교육’
    자녀 교육? 그건 자신 있지! 아들을 셋이나 낳아 키우는 부모인 데다 교육학을 전공해서 학위를 받고 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많은 사람이 ‘자녀교육을 어떻게 하느냐?’고 질문한다. 질문의 바탕에는 대개 우리 집 아이들은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자랄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큰아들이 중학교 2학년 때 40점짜리 시험지를 들고 왔다. 남편은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고시에 합격하여 탄탄대로를 걷고 있던 사람이므로 아들이 40점을 맞았다는 사실을 용납하지 못했다. 대체 성적이 이게 뭐냐고 아이를 다그치다가 급기야 “다음에도 점수가 이 모양이면 그때는 100대다.”라며 다짐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다음 시험에서 아이의 성적은 오히려 더 떨어졌고, 남편은 약속대로 방문을 잠근 채 아이를 100대나 때렸다.
    그러나 아들의 성적은 그 후로도 오르지 않았고, 오히려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풀다 보니 섭식장애까지 생겨서 몸무게가 자그마치 150킬로그램까지 불었다. 부모 자식 사이의 거리는 더 멀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은 드디어 엄마와 아빠를 향해 절규했다.
    “아빠, 그때 왜 저를 100대씩이나 때렸어요? 그날 저는 ‘나중에 아빠한테 꼭 복수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리고 엄마는 그때 어디에 있었어요? 왜 아들을 보호하지 않았어요?”
    우리 부부는 아들의 절규를 듣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동안 우리는 매우 잘못된 교육을 해 온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아들에게 울면서 사과했고, 그 후에야 우리는 진정한 화해에 이르렀다.
    나는 이 사건을 겪고 ‘내가 그동안 배운 교육은 대체 뭘까?’, ‘내가 가르치는 교육이란 게 또 뭘까?’라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의 잘못을 생각하면서 박사학위를 갖고, 좋은 직장에 가고,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이 좋은 부모의 자격이 될 수도 없을뿐더러 그것으로 한 사람의 행복이 결정된다고 보장받기도 어려움을 깨달았다. 오히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지식’이 아니라 ‘성품’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실제로 성품에는 그 사람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성품이 바로 당신입니다.’라고 말할 때의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평생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느냐 하는 것도 그 사람의 성품에 달려 있고, 인간관계도 성품에 의해 결정된다. 게다가 성품은 우리 사회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데, 사회구성원 각각의 성품이 그 사회의 의식과 문화 수준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인격론』으로 성품 교육의 중요성을 확신하다
    19세기에 일찍이 성품의 중요성을 깨닫고 ‘성품 훈련’을 강조해 온 사람이 『인격론』의 저자 새뮤얼 스마일스(Samuel Smiles)이다. 그는 의사였으나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치 개혁에 전력했다. 부패한 귀족계급과 정치세력을 비판하고 평등하지 못한 선거를 개선하기 위해 피땀을 흘렸다. 그러나 정치 개혁만으로는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악을 제거할 수 없으며, 개인의 인격(성품) 변화를 통해 비로소 세상이 변한다고 확신하고 『인격론』에서 ‘성품이 세상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동력’임을 강조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개인이 성품을 배우고 훈련하는 일이 교육의 근간이 되어야 하며 교육자로서 내가 해야 할 사명 역시 성품 교육임을 깨달았다. 그 후 30년 동안 나는 전 연령대에 걸쳐 정신적, 심리적, 행동적 특성을 고려해 ‘한국형 12성품 교육’을 개발하고, 많은 유·초·중·고·대학교와 기업에 이를 보급했다. 그 결과 가정과 학교는 물론 직장, 군대 등에 속한 수많은 사람의 성품이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에서 성품의 가치를 배우다
    사단법인 한국성품협회는 한 중학교의 전교생을 대상으로 성품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에게 “언제 행복하다고 느끼니?”라는 질문을 던졌다. 학생들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시험 잘 봤을 때”, “등수가 잘 나왔을 때” 등 온통 성적과 관련된 답변뿐이었다. 가족이나 친구와의 추억을 이야기한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처럼 학업에 매몰되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조차 할 틈이 없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행복, 인간관계, 성품 등 중요한 가치들을 생각해 보게 만들 책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선택한 책이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다. 포리스트 카터의 자전적 소설인 이 작품은 주인공 ‘작은나무’가 부모와 사별한 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주인공은 인디언인 조부모와 함께 지내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기쁨과 세상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기 위한 지혜가 무엇인지를 배워 간다.
    주인공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만들어 준 너그럽고 순수하고 사랑스런 분위기 속에서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이 결코 소유와 권력에 있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것은 자신을 좋은 성품으로 충만하게 채우고, 또 타인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음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할머니가 주인공 작은나무에게 ‘영혼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은 인상적이다.

    “영혼의 마음은 근육과 비슷해서 쓰면 쓸수록 더 커지고 강해진다. 마음을 더 크고 튼튼하게 가꿀 수 있는 비결은 오직 한 가지,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쓰는 것뿐이다. 게다가 몸을 가꾸려는 마음이 욕심부리는 걸 그만두지 않으면 영혼의 마음으로 가는 문은 절대 열리지 않는다.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비로소 이해라는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더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영혼의 마음도 더 커진다."

    우리는 돈과 권력에 매몰될 경우 자신의 욕심에 점점 잠식되어 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성품 좋은 사람들은 자신뿐 아니라 타인까지 이해하고 사랑함으로써 함께 행복해진다. 할머니는 손자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조부모의 사랑과 가르침 덕분에 작은나무는 고아였음에도 따뜻한 영혼을 품고 좋은 성품을 키울 수 있었다. 그리고 작은나무에게는 행복이 충만했다. 좋은 성품이 어린 소년의 영혼과 삶을 따뜻하게 만들어 준 셈이다. 우리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고 성품의 가치와 진정한 행복을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아마도 이 가을, 내 영혼에 따뜻함을 선물하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이영숙
    사단법인 한국성품협회 대표이자, 한국형 12성품교육론의 창시자이며 건양대학교 대학원 교수이다. 지은 책으로 『이영숙 박사의 12성품론』, 『인성을 가르치는 학교 만들기』, 『성품대화법』 등이 있으며, 그림책으로는 2016 세종도서 문학나눔에 선정된 『꿈꾸는 돌멩이』 등이 있다.

    내용보기
  • 일찍 읽었더라면 좋았을 책들 프로그램 정보
    일찍 읽었더라면 좋았을 책들
    칼럼명 일찍 읽었더라면 좋았을 책들
    집필자 서민 (단국대 의과대학 교수)
    내용 『온도계의 철학』. 이 책의 저자 장하석은 내 초등학교 동창이다. 동창 중 유명인이라고 할 만한 친구는 장하석과 나밖에 없는데, 내 인지도가 전공과 그다지 관계없는 방송 출연 덕분인 반면 장하석은 자기 분야를 열심히 파고든 끝에 이 자리에 올랐으니 훨씬 더 대단하다. 책 얘기를 하기 전에 저자의 이력을 간단히 소개하는 건 이 때문이다. 장하석은 중3 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크게 감동하고, 물리학을 자신이 평생 전공할 과목으로 정한다. 당시는 번역을 썩 뛰어나게 하던 때가 아니었기에, 장하석은 원서를 직접 구해서 읽는다. 그렇게 열 번을 읽고 난 그는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을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간다. 칼텍이라는,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한 곳에서 물리학을 전공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물리학의 한계를 느꼈고, 과학과 철학을 접목한 과학철학을 자신이 걸어갈 길로 정한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런던대학교 교수가 되며, 43세 때인 2010년에는 그 유명한 캠브리지 대학의 석좌교수가 된다. 석좌교수란 그 분야에서 혁혁한 업적을 쌓은 이를 교수로 모시는 제도인데, 그 나이 또래에 석좌교수가 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그의 이력에는 눈여겨볼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코스모스』를 읽고 자신의 앞날을 정했다는 점이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할 것인가 결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 이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국어를 배우다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하는 건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교육 과정은 의무고, 시험도 치러야 한다. 억지로 외워야 하는 과목을 평생 전공하고 싶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자신이 우연히 읽은 책의 주인공이 과학자라면 어떨까? 그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책을 읽다 보면 과학자로 사는 것도 멋진 일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코스모스』는 칼 세이건이 노골적으로 독자들을 유혹하는 책이다. “너희들, 우주에 한번 와 봐. 아주 멋지다고. 외계 생명체도 있을 거야.” 장하석은 이 유혹에 넘어갔다. 그렇다고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다 과학자가 되는 건 아니다. 책은 그 사람에게 있는 과학 DNA를 깨어나게 할 수는 있지만, 없는 DNA를 심을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 자신의 DNA가 어떤 쪽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야 한다.

    둘째, 아니다 싶으면 그만둘 수 있는 용기다.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 거야 그리 대단할 건 없지만, 자신의 꿈이었던 물리학을 그만두는 건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나 같으면 물리학에 애정이 없어도 ‘칼텍 물리학 학사 타이틀’을 우려먹으며 살았으리라. 그런데 장하석은 그렇게 하는 대신 중간에 철학으로 전공을 바꿨고, 스탠포드에서 박사 학위를 받는다. 그럼 그때까지 배운 물리학은 아깝지 않느냐 싶지만, 장하석은 물리학에 철학을 접목해 과학철학의 거장이 된다. 그가 쓴 『온도계의 철학』은 과학철학이라는 게 어떤 학문인지 알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지난 6년간 영어로 저술된 최고의 과학 저작물에 수여하는 상’인 ‘러커토시상(Lakatos Award)’을 받았다. 뛰어난 과학 전문가들이 추천했으니 좋은 책인 건 확실하다. 하지만 내가 이 지면을 빌려 『온도계의 철학』을 추천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과학적 사고를 익히는 데 이 책만큼 좋은 교재는 없기 때문이다.

    과학적 사고란 무엇일까? 포털을 찾아보니 여러 버전의 설명이 나와 있지만,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과학적 사고는 주어진 모든 것을 의심하고, 믿음의 근거를 찾으려는 태도.’ 예를 들어 변 색깔이 황갈색인 이유가 뭘까? 흰밥, 미역국, 백김치의 조합으로 식사를 해도, 자장면을 먹어도 변은 여전히 황갈색이다. 매일 변을 보면서도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원래 그래.’라든지 ‘이해 못 하면 외워.’라는 말에 너무도 익숙해서다. 그러다 보니 변 색깔이 변하면 왜 이럴까 당황해하고, 혼자 고민한다. 하지만 우리가 먹은 음식에 담즙과 세균이 섞여서 황갈색이 만들어진다는 걸 안다면, 변 색깔이 변해도 크게 당황해하지 않고 병원을 찾아가게 된다. 수없이 많은 사과가 떨어졌지만 오직 뉴턴만 중력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유일하게 과학적 사고를 했기 때문이다. 『온도계의 철학』의 주제는 ‘물이 100도에서 끓는다.’는 사실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책은 여기에 질문을 던진다. “그 100도라는 건 도대체 누가 정했니?” 이런 질문을 받으면 변 색깔이 변했을 때처럼 당황하게 된다.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온도계의 철학』은 여기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가는데, 이 과정이 제법 흥미롭다. 내가 어릴 때 이 책을 읽었다면 기생충을 이용해 뭔가 대단한 일을 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물론 이 책을 읽는 건 쉽지 않다. 과학만 해도 어려운데, 거기에 철학적인 내용까지 들어가 있으니까. 게다가 설마 했지만 544쪽에 달하는 책 전체가 이것에 대한 내용이다. 읽다 보면 “야, 적당히 좀 하자. 100도를 누가 정했든 그게 뭐가 중요해?”라며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다. 어느 분이 쓴 리뷰다. “화학 전공자인 저도 읽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중간중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직접 자료를 찾아보느라 꽤나 힘들었습니다.” 내가 이 책을 권하는 두 번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 어려운 책을 읽으면 인내심이 길러진다. 사실 과학에서 인내심만큼 중요한 덕목은 없다. 파울 뮐러(Paul Hermann Muller)는 강력한 살충제를 만들기 위해 여러 물질을 합성했는데, 4년간 349번의 실패를 딛고 만든 것이 바로 DDT였다. DDT는 단순히 곤충만 죽인 게 아니라 말라리아처럼 곤충을 매개로 전파되는 질병까지 확 줄여 버렸기에, 뮐러는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말이 쉽지, 4년간 349번의 실패를 거듭하는 건 엄청난 인내심이다. 밀러가 어떤 방법으로 인내심을 길렀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시대에는 『온도계의 철학』이라는, 인내심을 기를 좋은 방법이 있으니 노벨상에 도전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는 게 좋겠다.

    혹시 이 책을 버겁게 느낄 분이 계실까 봐 저자의 다른 책을 추천한다.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는 저자가 우리나라에서 했던 강의를 정리한 책이다. 『온도계의 철학』과 달리 과학에서 중요한 발견들과 그 의미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어서 읽다 보면 마구 과학이 하고 싶어진다. 벌써 과학을 전공하고 있는 내가 그럴진대, 과학의 길에 들어서지 않은 분이라면 훨씬 더할 것 같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과학의 길에 입문하고, 『온도계의 철학』으로 과학적 사고와 인내심을 기른다면, 노벨과학상도 그리 멀지 않다. 아쉽다. 내가 노벨과학상을 타지 못한다면 그건 순전 어릴 때 이런 책이 없었던 탓이다.
    -----------------------------------------------
    서민
    글 쓰는 기생충 박사. 단국대 의과대학에서 기생충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방송활동과 기고도 활발히 하고 있다. 저서로는 『안녕 돈키호테』, 『서민적 정치』, 『똑똑, 상냥한 기생충이 찾아왔습니다』, 『서민의 기생충 콘서트』 등이 있다.
    내용보기
  • 보물섬으로 떠난 유비, 관우, 장비 프로그램 정보
    보물섬으로 떠난 유비, 관우, 장비
    칼럼명 보물섬으로 떠난 유비, 관우, 장비
    집필자 이우영 (검정고무신 작가)
    내용 사내아이들의 장래 희망은 대통령, 과학자, 장군, 판사. 여자아이들은 어른들 봉양과 남편 내조, 더불어 아이까지 잘 돌보는 신사임당 같은 현모양처가 되는 게 꿈이라고 적어 내던 시절이 있었다. 나의 꿈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다른 친구들이 그런다고 하니까 도대체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판사로 내 멋대로 일찌감치 꿈을 정해 버렸다(지금 생각하면 멋쩍은 웃음만 난다. 공부에 그렇게 취미도 없던 주제에 말이나 되는 희망인가). 그러던 차에 내 꿈을 확 바꾸어 버린 것이 있었으니, 어느 날 아버지가 퇴근길에 사 오신 한 권의 책이 그것이었다.
    그 책의 표지에는 ‘보물섬’이라고 씌어 있었다. 우리가 아는 스티븐슨의 절름발이 해적 실바가 나오는 소설 『보물섬』이 아니라 월간 만화 잡지 「보물섬」이었다(그러고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건 모든 사람의 바이블 같은 책 뿐만은 아닌 것 같다). 두툼한 그 책 속에는 그야말로 신기한 만화와 이야기가 잔뜩 들어 있었다. 빙하를 타고 내려온 둘리가 고길동 아저씨네 얹혀 생활하는 이야기인 ‘아기공룡 둘리’(어릴 때는 둘리와 친구들에게 못되게 한다는 생각을 했던 집주인 길동이 아저씨.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길동이 아저씨가 정말 대인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군식구들을 내쫓지 않고 거두어 같이 살았으니 말이다). 조선 시대 역사 이야기를 서당 훈장님이 재미있게 풀어내는 윤승운 선생님의 ‘맹꽁이 서당’,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엄마를 생각하며 열심히 트랙을 뛰어 훌륭한 선수가 되는 이야기를 담은 명랑 순정 만화 ‘달려라 하니’ 등등 일단 책장을 펼치면 끝까지 보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정도였다.
    지금이야 웹툰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시대라 남녀노소 누구나 만화를 접하고 심지어 많은 청소년의 장래 꿈으로까지 자리를 잡고 있지만 1980년대 당시엔 ‘만화책은 나쁜 것이야’란 이미지가 강해서 아이들이 만화책을 보려면 부모님의 눈을 피해 몰래몰래 보던 시절이었기에 부모님이 손수 만화 잡지를 사다 주시는 경우는 내 기억으로는 흔한 일은 아니었다. 아들이 훗날 만화가로 먹고살게 될 줄 아셨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한번 맛을 들이고 나니 부모님이 사 주시지 않으면 직접 돈을 모아 책을 사기도 했다. 자꾸 보다 보니 나도 한번 그려 볼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고 그렇게 만화 습작이 시작되었다. 감명 깊었던 영화 ‘죠스’를 패러디한 만화가 첫 습작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그때부터 내 장래 희망은 만화가로 굳어져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습작 시간이 마구 길어져 방학 내내 엉덩이 아픈 줄 모르고 하루 9시간씩 만화만 그려 댔다. 「보물섬」에 4컷 만화를 투고해 실리기도 했다. 부모님은 그때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아시고 공부 안 하고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꾸중하시고 원고를 감추고 하셨지만 이미 만화의 재미에 빠진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만화를 그릴 때만큼은 나는 조물주나 다름없었다. 현실에서야 공부도 중간, 쌈도 못하는 그저 그런 아이였지만 만화 속에서만큼은 내 캐릭터들을 내 손끝에서 울게도 웃게도 만들 수 있었으니 조물주와 다를 게 무어겠는가? 결국 만화가를 꿈꾼 지 7년 만인 1992년 4월 「소년챔프」 제1회 신인작가 공모전에 우수상으로 입상, 7월부터 ‘검정고무신’을 연재하게 되었다. 그해 12월 18일, 다음 날이 군 입대일인데도 나는 만화를 그리고 있었다. 출판사에서는 만화 연재의 중단을 막고자 훈련소를 거쳐 자대를 배치 받고 자리 잡는 시간까지의 세이브 원고를 요구했고 나는 10주치의 원고를 미리 그려 놔야 했다. 한때 만화를 반대하시던 아버지는 옆에서 캐릭터들의 머리를 붓으로 칠하며 도와주셨다(지금이야 컴퓨터 작업이지만 그때는 모든 걸 손으로 작업했다).
    “놀지도 못하고 가는구나.”
    “괜찮아요.”
    서로 별다른 대화 없이 묵묵히 작업에 몰두했던 시간들. 결과적으로 군대에서 만화 연재를 이어 갈 수는 없었다. 개인 작업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자대 배치 첫날부터 깨졌다. 애초에 이등병의 바람이 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연재가 중단되지는 않았다. 편집부에서 만화를 그릴 줄 알던 두 살 터울 친동생에게 ‘형 대신 네가 연재해라’라는 제안을 했고 동생이 내가 군대 있는 시간 동안 잘 그려 주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인기도의 상승으로 페이지당 가격을 2만 3천 원에서 4만 원까지 올려 놓고 페이지도 8페이지에서12페이지까지 늘려 놓았다. 이후 나는 제대하고 동생은 입대를 하면서 다시 바통을 넘겨받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부모님께 감사드릴 일이 참 많다. 처음 만화를 접하게 해 주셨고 이런저런 책을 많이 사다 주셔서 책 읽기의 즐거움도 알려 주셨으니 말이다. 「보물섬」에 이어 머리를 스치는 책이 또 하나 있다. 모처럼 주말에 일찍 들어오신 아버지가 박스 하나를 내미셨다. 그 속에 들어 있던 것은 16권짜리 『삼국지』 전집이었다. 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박스를 열었을 때 느꼈던 새 책들의 냄새. 뇌리에 진하게 박힌 그 냄새는 책 읽는 재미로 빠져들게 해 주었다. 작고하신 신동우 화백의 삽화가 글과 잘 어울려 있어 그야말로 밥 먹는 것도 잊게 해 주었던 『삼국지』. 유비, 관우, 장비, 조자룡, 그리고 제갈공명 등 캐릭터 하나하나가 살아 있어 손을 뗄 수 없었고 어느 정도 외울 만큼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제갈공명이 오장원에서 사마의와 긴 대치 끝에 병으로 죽을 때, 너무 슬퍼서 울기도 했었다. 오죽하면 다시 이 책장을 펼쳤을 땐 제갈공명이 살아나는 이야기로 바뀌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을까. 지금도 이 책들은 동생 집에 보관되어 있다. 옛 기억을 떠올리다 보니 문득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부모님은 어려운 살림에도 우리 형제를 위해 책을 참 열심히 사다 주곤 하셨는데(과학 전집 시리즈, 컬러 학습 대백과 등 모두 40년 가까이 보관 중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나 하는 생각에 말이다. 요즘은 지역 도서관들이 잘 발달해 있다. 아이들 데리고 놀이 삼아 한번 찾아가 봐야겠다.
    내용보기

확인